다양한 식물 싹 다 밀고 '핑크뮬리'만…참 이상합니다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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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물(인간), 참 이상합니다. 한 종류의 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으면 사람들은 엄청난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똑같은 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굉장히 감격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은 통일된 자연. 정돈된 자연. 예컨대, 핑크뮬리가 온통 넘실대는 분홍 물결의 밭. 혹은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가지런히 이어진 숲. 노랗고 큰 이불을 하늘에 덮은 것 같은 은행나무만으로 이뤄진 숲.
그런 풍경이 이상하다는 말이 쉬이 납득이 안 될 무렵, 최재천 생태학자가 다른 숲 사진을 보여줬다. “저는 열대 정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서, 이런 숲을 더 좋아하거든요.”
나무와 다른 나무가 빽빽하고 복잡하게 얽킨 숲. 나뭇가지와 다른 나뭇가지가 뒤엉키고, 수풀이 사람 키 높이만큼 자라 있기도 하며,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숲. 자연 상태로 그냥 두었을 때 저절로 만들어진 숲.
그 숲이 아름답다고 하는 거였다. 자세히 바라봐야 보이는 첨예하고도 섬세한, 자연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 그게 몹시 흥미로웠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에 깼더니 애벌레가 돼 있었다, 그게 소설의 시작이다. 그 애벌레가 이파리를 맛있게 먹는다. 다 먹으면 고민에 빠진다. 자연계는 워낙 다양한 곳이라, 먹었던 것과 똑같은 이파리가 또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옆에 있는 걸 먹어본다. 못 먹겠다 싶으면 찾아 나서야 한다.
“5m쯤 떨어진 곳에 그 나무 이파리가 있다면요. 작은 애벌레에겐 그야말로 구만리 같은 길입니다. 직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식물들 냄새 맡고, 시식하고, 토하면서 가야하죠. 그 이동 시간 동안, 애벌레가 처음에 먹어치운 맛있는 식물은 또 작은 이파리를 만들어내며 자랍니다. 자연에서는 ‘다양성’이 ‘다양성’을 담보해주죠.”
최재천 생태학자가 꼽은 또 다른 사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첫 변이가 알파로 시작했거든요. 베타가 잠깐 나왔다가 델타 때 우리가 많이 힘들고 죽었습니다. 그다음 오미크론은 감기처럼 앓고 털었지요. 불과 1년 반 사이에 3번에 걸친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자연은 원래 이런 곳입니다. 끊임없이 다양화합니다.”
그가 인용한 영국의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논문 속 문장은 이랬다. ‘자연을 순수를 혐오한다(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 = 그만큼 다양성이 크다).’
인간이 ‘농사 짓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코스타리카 정글 갔을 때, 바나나 농장을 찍은 사진인데요. 마치 바나나 공장 같지요? 우리가 농사 짓는 방식이 어떻지요? 저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 있는 식물 다양성을 완벽히 0(제로)으로 만들고, 원하는 거 하나를 심습니다. 농사 전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뒤엉켜 살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바나나가 좋은 곤충에게는 순식간에 열리는 천국. 예쁜 곤충이라고 하다가도, 내가 심은 걸 먹으면 해충이라며 살충제를 또 뿌리고.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보는 농업은 그렇다고 했다. 그 유명한 책 <총·균·쇠>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이리 말했단다. ‘농업은 우리 인류가 저지른 실수 중에서 최악이었다.’
동물도 마찬가지. 최재천 생태학자가 말했다. “우리가 기르는 가축들. 양계장이나 양돈장 가실 기회가 있으면 얼굴을 한 번 보세요. 진짜 똑같이 생겼습니다. 복제 동물 수준입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결여된 거죠. 공장식 사육을 하면 어떻죠? 한 마리가 병에 걸리면, 똑같은 애들이 옆에 붙어 있으니 다 같이 걸리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호모 사피엔스(현 인류)’란 동물은, 다양성을 혐오하는 것 같다고. 질서를 만들어낸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전부 다양성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그걸 매일 같이 하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불과 1만년 사이, 농경이 시작된 이후 인간은 생물 다양성을 얼마나 파괴했을까? “당시 호모 사피엔스가 대한민국 인구 정도였어요. 5000만명-5500만명 정도. 지구에 살고 있던 모든 포유 동물과 새의 전체 중량에서, 호모 사피엔스(기르던 개와 고양이 포함)의 비율을 계산해봤더니 1%도 안 됐습니다.”
그러다 1만년 전 ‘농경’을 시작하며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었다. 올해 기준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80억 명, 여기에 평균 무게 65kg을 곱하면 인류 전체의 무게가 나오는데, 기르는 모든 동물의 중량까지 합치면 전체의 96%-99%라고. 1만년이란 짧은 시간에, 야생동물들을 1% 남짓으로 밀어버리고 지구를 완벽히 장악했다.
이 같은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팬데믹(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질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야생동물 몸에 붙어 사는 바이러스들은 사는 게 너무 힘들테고요. 거의 백발백중으로, 인간 아니면 인간이 기르는 동물에게 이주하는 걸 꿈 꿉니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질 수 밖에 없단 겁니다.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요.”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최재천 생태학자는 기업의 ESG를 언급하며, 여기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E와 S와 G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다양성’이라고 했다.
“G의 다양성은 오너 혼자 다 먹지 말란 거잖아요. 이사회에 거수기 불러놓고 ‘찬성합니다’ 하지 말란 거죠. 다양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란 거고요. S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기업들도 참여하란 거고요. E는 당연히 생물 다양성 이슈죠. 기업이 바뀌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회가 바뀌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끝으로 최재천 생태학자는,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2002년 한국생태학회 대회에서 했던 얘길 들려주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도 확립되지 않던 그 시절, 박경리 선생이 이리 말했단다. “우리,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갖고 살아봅시다!”
더는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말. 후손에게 그리 물려줘야만 그들도 누릴 수 있을 거란 지극한 염려의 말. 그 말에, 전 세계 생태학자 수천 명이 박경리 선생을 향해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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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0일 오전 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