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심리학] 속으로는 두려우면서 대범한 척하지 말라, 조직 혼란 더 커진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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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기업을 방문했을 때 그 기업의 CEO가 매우 독특한 질문을 하며 조언을 구해왔다. 삶의 경륜이나 일의 경험 등이 어디로 봐도 필자보다 훨씬 더 풍부한 분이 머뭇거리면서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라며 살짝 민망해하는 느낌도 받았다.
이야기는 이렇다. 평소 젊은 직원들과의 수평적 대화에 관심이 많았던 CEO가 그들과의 대화에서 최근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몇 차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젊은 직원들과 거리를 좀 두고 심지어 수평적 대화에 관한 자신의 방침도 철회해야 할지를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직접 겪었던 경험을 하나 이야기했다. 얼마 전 장애를 가지신 이들이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 이동권과 관련된 항의 집회를 몇 차례 연 적이 있다. 방법의 적법성에 관한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그 시위로 겪게 됐던 불편함과 관련해 모 기업 부장과의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그 부장과 필자는 세미나 참석을 위해 지하철로 이동 중이었고, 그 시위로 인해 세미나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미나 주최 당사자이자 진행자였던 부장은 매우 당황했다. 불편함이 섞인 짜증스러움이 나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부장은 평소에 장애인 권리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분이라, 그 짜증과 당황스러움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그 와중에 심리학자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말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Fear is reaction. Courage is a decision(공포는 반응이다. 용기는 결정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라고 알려진 이 한마디가 참으로 타당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포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반응이다. 하지만 용기는 결정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어떤 것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최종적인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결정은 분명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뇌에서의 발생 순서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종종 동일시해야 한다는 착각을 하거나 오류를 저지른다. 시위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원하고 지지를 하는 것은 결정이다. 그래서 그 부장의 당황스러움을 이런 말로 덜고자 했다. “부장님, 짜증 내세요. 그리고 그분들을 응원하세요.”
반응과 결정을 동일시하면 자신이 느낀 부정적 감정과 평소의 가치관 중 어느 하나를 왜곡하는 오류가 벌어진다. 1️⃣첫 번째는 화가 나고 불쾌하니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의심하는 경우다. 2️⃣두 번째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감정들이 자신의 신념 체계와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경험한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다.
따라서 지혜로운 리더라면 마땅히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애써 부인하면서 대범한 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명백한 위기를 앞에 두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와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리더의 입에서 나오면 오히려 더 큰 불안과 혼란감이 조직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혜로운 리더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12척으로 330척 왜선에 맞서야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다룬 영화 <명량>의 대사가 떠오른다.
“육지라고 안전할 것 같더냐. 우리에겐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이제 우리가 죽을 곳은 바다 뿐이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죽기를 작정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애쓰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고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자 한 지혜다. 윈스턴 처칠이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고 난 뒤 깨달은 바를 말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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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7일 오후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