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 젊은이들에겐 더 구체적인 희망이 필요 | 커리어리

밑줄 - 젊은이들에겐 더 구체적인 희망이 필요합니다. 나는 34년생, 태어나는 순간 식민지 아이였어요. 눈 떠보니 전쟁이었죠. 최악의 환경이기에 나아질 희망도 구체적이었어요. 전쟁 때는 살려고 발버둥 쳤지,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나는 26살에 논설위원이 돼서 머리 허연 주요한 선생과 같이 논설을 썼어요. 다들 어려웠고 더 패기가 있었죠. - 지금은 GDP 10위권의 거대 도시에 살아도, 더 막막하고 불행해요. 그러나 세계가 이미 다 세팅된 것 같아도, 더 나은 길과 몫이 반드시 있습니다. 단적으로 코로나 백신 누가 만들었어요? 터키 이민자였습니다. 남들이 다 포기한 messenger RNA로 다르게 가서 결과를 냈지요. 비주류, 마이노러티가 진짜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왔어요. *** 밑줄을 많이 쳤는데, 실제 분량은 얆은 책 한권에 가까울 정도로 기네요. 길고 길지만 시간 내서 천천히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그런 인터뷰입니다. 마케팅이랑은 무슨 상관이냐고요? 사람을 읽고 시대를 읽는게 왜 상관없겠어요. 제게는 너무 좋은 공부였습니다. *** - 그는 책에서 죽음이란 어떤 상태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관찰하고 온몸으로 감각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 있던 곳으로의 귀가라는 점에서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소리와 같다’고도 했다. - 여기 컵이 있죠? 이게 육체예요. 죽음이 뭔가? 이 컵이 깨지는 거예요. 유리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 내 몸이 깨지는 거죠.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져요.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져. 안 사라지는 건?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에요. 비어 있던 컵의 공간, 그게 은하수까지 닿는 스피릿, 영성이에요.” - 영성이 컵 안의 빈 부분이라면, 그건 공간의 문제로군요.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고요. - 대화는 함께 낳는 거예요. 초대해서 함께 낳는 거죠. 이 세상의 모든 생각은 개인이 했더라도 반드시 함께 만든 겁니다. - 요즘의 멍때린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판단 중지 상태예요.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니 생각을 멈추기 위해, 자기방어 기재로 쓰는 게 요즘의 ‘멍때리기’야. 자기만의 진공 상태를 만드는 거죠.” - “진공의 배예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하기 직전에, 노아의 방주처럼 진공의 배를 만든 겁니다. 그게 멍한 상태예요. 오늘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새로운 능동형 인간이 되고 있어요.” - - “말이 우선이에요. 글 쓰는 사람도 말을 떠나 존재할 수 없어요. 김소월 시인의 유명한 시가 있잖아.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감정도 말로 표현해야 감정으로 나오는 거예요. 소리 지르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죠? 말이 그거예요. 가만히 있다가도 어떤 말이 생기면, 그 감정이 생겨요. ‘슬픔? 아, 내가 슬프구나’. 슬퍼서 슬픔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말을 하니까 슬퍼지는 거죠. - 인간은 말을 떠나서 존재할 수가 없어요. 북극의 에스키모에게 낙타라는 말이 있겠어요? 없지. 말이 없으면 사물도 없어요. 거꾸로 낙타가 있는 더운 지방에 눈이 있겠어요? 없지. 눈이라는 말도 없어요. 그러니까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이 없는 거예요. - 정치가들이 아무리 권력이 강하고 돈이 많아도, 상징계와 자연계는 노터치예요.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이 버틸 수 있어요. 권력 가진 자들이 법은 지배해도 나의 언어는 못 건드리거든.” - 플라톤한테도 프로이트한테도 아인슈타인한테도 나는 쫄지 않았어요. 라틴어, 그리스어, 한자로 남아 있으면 진리고, 우리말로 남아 있으면 별것 아니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 나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쓴 적이 없어요. 나를 향해 썼고, 내가 발견한 타우마제인이 벅차서 쓴 거예요. 그걸 독자가 같이 읽고 공감해주면 신이 났어요. - - 책을 재미로 읽지, 의무로 읽나? 컴퓨터의 브라우저는 새싹을 뜻하는 말이에요. 짐승이 새싹 뜯어 먹듯 독서 하면 됩니다. 재미없으면 덮고 느끼면 밑줄 치는 거죠.” - 난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보면 설레요. 저 속에 뭐가 있을까, 언젠가 만나면 운명적인 글을 쓰게 되겠지. 그래서 소가 풀을 뜯듯 자유롭게 책을 읽으라는 거예요. 책 쓰는 사람은 씨 뿌리듯 시스템을 쓰지만, 읽는 사람은 자유롭게 읽어요. 쓰는 감각, 읽는 감각이 서로 그렇게 달라요.” - 그가 아흔아홉 마리 양으로 떼 지어 살지 말고 한 마리 양으로 생을 어슬렁거리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흔아홉 마리 양은 목자 엉덩이만 쫓아 눈앞의 풀만 뜯어 먹지만, 한 마리 양은 구름을 보고 꽃향기를 맡다 홀로 낯선 세계로 나아간다. - 유년은 아직 육체가 마인드라는 물로 채워지기 전의, 영성의 세계예요. 언어로 설명되기 이전의 세계죠.” - (정색하며) 그런데 “나는 바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에요. “한국이 이런 나쁜 짓을 했습니다” 하는 순간 거기서 이미 벗어난 거야. 진짜 무서운 건 그걸 감추는 나라죠. 우리는 모순을 드러냈기에 자유로운 겁니다. 고해성사 같은 거죠. 자신을 고발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희망이 있어요.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인간은 믿을 만 하다는 것, 세계인들은 그걸 보고 안도한 겁니다.” - 코로나 시대의 인류도 ‘오징어게임’과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도 친구도 바이러스 보균자가 되면 낙인이 찍혀요. 죽어도 장례도 못 치르죠.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묵묵히 그들을 돌보고 시체를 치우는 사람이 있었어요. - 드라마처럼, 인간도 반전의 역사를 반복했어요. 36억 년 전의 진핵세포가 여기까지 진화한 것은 선한 의지의 힘이었죠. 모든 생명체가 그 방향을 알기에, 캄브리아기보다 더 많은 생명체가 지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마세요.” - - 살아남은 저희는 무엇을 의지해서 나아가야 합니까? “마지막에 믿을 건 성기훈처럼 자기 안에 있는 휴머니티예요. 자기 안의 세계성, 자기 안의 영성… 그것이 치킨게임 같은, 오징어게임 같은 세상에서 여러분을 아름다운 승자로 만듭니다. 믿으세요. 착한 자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는 악한 현실과는 다른 원리가 역사를 지배해왔다는 것을. - 그때 제일 중요한 게 인터페이스예요. 아날로그의 입자와 디지털의 파동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그 ‘사이’를 고민하는 자입니다. 머리(디지털)와 가슴(아날로그)을 연결하는 목. 우리는 생명을 목숨이라고 해요. 서양은 목 neck에 걸리면 나쁜 거잖아. 우리는 목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길목, 손목, 나들목… 어른들이 ‘사이 좋게 놀아라’ 하듯이 현실과 가상, 로봇과 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사이좋게’ 만드는 게 관건이에요.” - 그러니까 발견해야 합니다. 사이의 언어를! 인터페이스의 생명을! 우리는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섞어 짜파게티를 만드는 민족이에요. 내가 얘기한 디지로그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등분이 아니라 융합하고 새끼 쳐서 새 생명이 나오는 생명 자본의 세계예요. 남녀가 만나 어린아이를 낳듯 이질적인 것이 섞여 새 세상을 만들죠.” - - 언제 신의 은총을 느끼십니까? “가장 고통스러울 때죠.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파요.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껴요.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해요.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져요.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습니다(웃음).” -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어요.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조선비즈

2022년 1월 21일 오전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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