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 //안목은 | 커리어리

⏳⌛️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 //안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예전에 <청담동 앨리스 (2012)>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중 내게 강렬하게 남았던 장면이 있다. ​ 서브 여주 (디자인팀장): 넌 안돼. 여주 (비정규직 디자이너): 왜 저는 안되죠? 뭘 더 노력하면 되죠? 서브 여주: 너는 안목이 없어서 안 돼. 그런데 이 안목이란 건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안목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보았고, 어떤 사람들과 살아왔는지가 만드는 능력이거든. 그러니 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 이 둘의 대화는 꽤나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아서 <안목>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상 화려하고 좋은 신문물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내가 가진 안목에 대한 의구심이 늘 있었다. 디자이너에게 안목은 창작물을 잘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재능이라서 창의력만큼 중요한 자질인데, 뭐랄까…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거라면 원망이나 좌절 말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싶었다. (아마도 가라앉아있던 열등감이 휘저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 //궁핍은 정신을 속박한다 얼마 전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In Time (2011)>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간략한 스토리는 이렇다.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1년의 유예 시간을 얻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각자가 가진 시간으로 계산한다.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풍족한 시간을 갖고 영생을 누리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고금리로 빌리거나 훔쳐서 조달한다. 주인공 윌은 빈민가에서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간다. ​ 어느 날, 이미 105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116년이나 남은 해밀턴과 만나게 된다. 사는 게 지겨운 해밀턴과의 대화가 매우 흥미롭다. ​ 해밀턴: 난 이제 그만 죽고 싶어. 윌: 당신 문제가 그거야? 너무 오래 살았다는 거? 해밀턴: 너한테 내가 가진만큼의 시간이 있다면 넌 뭘 할 건데? 윌: 시간 확인하는 걸 멈출 거야. ​ 윌의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영화를 멈추고 한참을 생각했다. 윌의 고통은 가난이 아니라 불안이 아니었을까. 시간 부자가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지겨운 불안에서 벗어나는 일. ​ //몸에 새겨진 삶의 흔적 우연히 백 년이 넘는 시간을 얻게 된 윌은 (시간) 부자들이 모여서 사는 부촌으로 입성을 하게 된다. 그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불공정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한다. 거금의 시간을 지불한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웨이트리스가 속삭인다. “당신 여기 사람 아니죠? 당신 지금 모든 행동이 너무 빨라요.” (시간이 멈춘 듯 사는 부촌에선 아무도 허둥지둥 급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 밥 먹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 출퇴근 시간을 모두 줄여서 빨리빨리 일을 해야 시간이 연장되는 삶을 살아온 윌에게 시간은 생명이었다. 시간(지불할 능력)이 생겨 비싼 호텔 방에 비싼 옷에 비싼 식사를 하지만, 불안한 눈빛과 몸에 새겨진 행동은 윌이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채게 한다. 몸에 새겨진 살아온 삶의 흔적. ​ //내가 살아낸 모든 시간은 의미가 있다 최근에 오랜 고질병인 허리 통증이 다시 도졌다. 아마도 오랜 재택근무로 운동 부족, 체중 증가, 깨진 생활 패턴 등등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상담도 같이 하는 중인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료사분의 관찰과 진단에 따르면 내가 가진 통증 스케일(저울)이 평균값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아프다고 할 만한 통증에 정상이라고 말하고, 보통은 고통스럽게 아프다는 통증에 나는 참을만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픈데 아픈 걸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아픈데 인지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아프다고 말하는 법을 잊은 건지, 분명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나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나에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잘 생각해 보라는 숙제를 주었다. (통증의 원인이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뼈들이 틀어지면서 생긴 거라서 자세를 교정하는 중인데, 일상생활에서 몸이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를 예민하게 알아채야 습관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나는 요즘 내 몸에 새겨진 내 지난 삶의 흔적을 역추적해서 실마리를 찾는 형사 놀이 중이다. 손목이 아프다면서도 일을 나갔던 엄마, 허리 통증으로 늘 허리를 구부정하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부터 장사를 했던 우리 앞집 야채가게 아줌마, 배가 아프고 열이 나도 학교를 가야 했던 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세상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 과거에는 안목이란 비싸고 좋은 것을 감상하고 구분할 수 있는 센서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타고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문득 안목이란 게 지나온 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센서라면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아픔의 깊이가 남다른 것 또한 내가 세상을 분별하는 나만의 안목 저울이 아닐까 싶다. ​ 세상에는 아파도 아픈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삶이 그러할 테고, 아프다고 하면 남자답지 못한 것처럼 듣고 자란 삶이 그러할 테고, 주변에 민폐가 될까 봐, 혹은 아프다고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기억이, 혹은 원래 다 그렇게 사는거 야라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무심했던 삶이 그러할 것이다. ​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들이 쌓여서 세상을, 그리고 나를, 감상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센서가 된다.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쌓여 있는지 예민하게 살펴보고 둔탁해진 센서들을 정비해 보려고 한다. 묵은 통증을 치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이번엔 나에게 잔소리를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아픈 걸 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미련한 거다. 나에게 하는 소리.

[커리어 노트 69]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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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8일 오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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