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라디오 광고에 이런 게 있었다. | 커리어리

예전에 어느 라디오 광고에 이런 게 있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여기 잡초가 있어요.”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OO야, 세상에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분명 고유한 풀일텐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니 이름 없는 잡초가 되는구나. 우리가 한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은 때때로 매정하고 무성의하구나. 어떤 제품의 광고인지는 잊었지만, 광고 카피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최근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생겼다. 월요일 밤 ‘싱어게인2’를 본방사수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나와 경연한다. 어쩌면 다들 그토록 잘하는지 볼 때마다 감탄한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지 케이팝과 한류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게 우연이 아니구나 싶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선 가수들이 톱10에 들 때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무대를 뒤흔들어도 7호 가수, 31호 가수, 33호 가수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톱10에 들어 자신의 이름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뭔가를 한다는 게 저런 거구나,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일이 저토록 간절한 바람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명함을 갖는다. 명함에는 이름과 속한 곳이 나와 있다. 입사를 해 처음 명함을 받으면 감격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데다 호시탐탐 ‘시간의 이빨’이 작용해 어느덧 감격스러움은 사라지고 모든 걸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회사와 동료들 덕분에 이룬 일을 자신의 성과라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간이 계속되면 위험하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조직 밖으로 나오면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타’가 올 테니… 한창 실무자로 일하던 때 내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있었다. 회사 ‘상표’ 떼고 내 이름 석 자로 통하겠다고. 그래야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발견한 영업 비밀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한편 ‘이름을 걸고 일하기’를 액션 플랜으로 삼았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끝없이 애쓰고 무릅쓰는 일이었다. 하기 싫고 귀찮고 힘든 일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간혹 클라이언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후지다는 말보다 더 아팠던 말은 성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내 이름은 남루하게 느껴졌고 부끄러웠다. 이름을 걸면 애쓰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경쟁에서 이기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게 되고 그런 노력이 모여 다시 이름을 만든다. 그러니까 어디 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름을 걸고도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런 실패엔 후회가 남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므로 부끄럽지 않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니 더 애써 보자라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당신은 이름을 걸고 일하고 있는가? 만약 회사를 위해 일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어서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동아광장/최인아]

Naver

2022년 2월 19일 오전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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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 성격을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20살이 넘으면 2가지는 상수(변하지 않는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 IQ(기초사고능력)는 20살이 넘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 성격은 15살만 넘어도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중딩 고딩때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어” “그때는 말수가 적었는데, 사회생활 20년 하다보니 말이 늘더라고” “말하는 양 자체가 늘었어. 그러니까 성향이 내향적에서 외향적으로 바뀐 거 아닐까?”   많이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아닙니다! 이런 경우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 사회적인 기술(Social skill)이 향상된 것입니다.   매너, 예의범절, 화법 등의 소셜 스킬들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어떤 타이밍에서 어떤 인터벌로 얘기하는 등 적절하게 밀고 당기는 사회적인 소통 능력이 향상된 것 뿐입니다.   이런 기초사고능력과 성격을 심리학에서는 기질이라고 합니다. 기질의 첫 번째 심리학적 정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적 형질입니다. 일찍 결정되기에 더 잘 안 변하는 겁니다. “낙천적이다” 혹은 “낙관적이다”라는 말을 쓰지요? 바로 성격을  얘기하는 건데요. 낙천적인 성격은 스트레스를 원래 안 받는 것이고, 낙관적인 성격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라는 생각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낙천적인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연구 결과를 보면 명백합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더 오래 살아요.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잘 될 거야,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 생각하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낙관적인 사람이 낙천적인 사람보다 더 훌륭한 리더가 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가 리더십의 자질을 결정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리더십의 본질은 낙관적인 관점과 생각이지, 성격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관점이 중요합니다. 리더십의 모체는 무엇일까요? 어떤 조직이든 숫자적인 비율을 볼 때 리더의 수가 많을까요? 직원의 수가 많을까요? 당연히 직원의 숫자가 더 많고 리더는 한 두 명이지요. 그럼 어떤 관점의 종류가 더 많겠습니까? 당연히 직원 쪽의 관점의 종류가 훨씬 더 많습니다. 나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그 생각이 바로 리더십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그걸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걸 적용하기가 무척 어렵고 불리한 환경의 나라입니다. ‘다양하다’의 반대말은 ‘동일하다’입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동질적인 문화입니다.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래서 관점의 다양함을 못 느낍니다. 쉽게 단결하고 같은 목소리로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에너지와 신속함은 장점은 되지만, 관점이 다양하다는 걸 경험을 못했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해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나와 다른 행동을 하면 관점이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수십 가지 종류의 성격적 신경을 모두 다 갖고 있습니다. 그중에 무엇을 조금 더 민감하게 사용하느냐 뿐이지요. 그래서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해지는 건데요.   그것의 출발은, 특히 우리나라 같은 동질 문화권에서는, 이런 생각이 리더십의 출발입니다.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관점을 잘 이용하면 더 지혜로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리더십 키우기] 낙천적 성격과 낙관적 성격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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