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커리어 중에서도 라디오헤드의 크립 같은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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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크립’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탓에 라디오헤드가 공연 때 절대 부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부른다. 부르지 않았던 기간이 있기는 있었다. 한때 톰 요크는 ‘크립’을 “쓰레기(crap) 같은 곡”이라면서 경멸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변한 건 200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심지어 한 공연에서는 “이 곡 꽤 좋아해요”라면서 ‘크립’을 노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톰 요크와 멤버들의 심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처럼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자기 운명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커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고와 행동에 여유로움이 깃든다고 할까. 그들이 ‘크립’을 다시 품게 된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을 터다. 과연, 이어령 선생의 표현대로 상처와 활이 하나가 되는 순간 새로운 지평은 열리는 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