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디자인>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 난/된 단상 #1 실례지만 잠깐 욕부터 하겠습니다.(??) - 나쁜놈
'나 뿐인 놈' 에서 나온 것으로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 - 못된놈
'되다'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 즉, 덜 된 사람. 온전하지 않은 사람. - 막된놈
역시 '되다'를 기준으로 온전함과 거리가 멀고 아무렇게나 된 사람. - ~의 자식
예를 들어 ‘나쁜놈의 자식’, ‘나쁜자식’이라 한다면 욕을 먹는 대상자 뿐만 아니라 그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 부모와 가정환경까지 욕하는 셈.   제가 어렸을 때 세상만사에 전부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큰 오빠로부터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일부 한국의 욕에 담긴 인간미에 대한 고찰'을 수강(?) 했던 적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우리나라의 욕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욕의 대상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모멸감을 안겨주는 욕이 아니라 바로 중학교 도덕시간에 배웠던 '된사람'이라는 인격적, 성품적 온전함을 향해 '되어 가고 있는' *** 과정에서의 시각 ***으로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연민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미래지향적이며 건설적인 형태의 욕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욕이라며 우리 조상들의 인격적 훌륭함에 대해 탄복해 마지 않는데 저는 그런 큰 오빠에게서 어떤 애국심마저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좀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여하튼 ‘된사람’은 위와 같은 욕의 도달점이자 목표지점인 셈입니다. 그리고 '된사람'과 늘 함께 등장하는 '난사람'이란 말이 있지요. 익히 알다시피 세상에 잘 나왔다는 말인데 입신양명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이제 오늘의 주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어제의 막강한 권력자가 오늘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경우를 통해 알게 됩니다. 어제의 막강한 권력자는 '난사람'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오늘 그 모든게 박탈 당했다면? 그 '난사람'의 추락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못된 난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 '난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에 '난사람'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난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난사람'을 대단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우러러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존경받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사람'보다 '된사람' 되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된사람'은 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된 난사람', 다시말해 '난사람인데 된사람이기까지 한 사람'은 가뭄에 콩나듯이 매우 희소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대단하며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고 웬만해서 그들은 추락하지 않습니다.   추락하는 어제의 막강했던 ‘못된 난사람’을 향해,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욕을 하곤 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한편으론 씁쓸한 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저도 '못된 사람'이라 실수와 잘못을 많이 저지릅니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 되어 가는 과정 ***으로 보아주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의 제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 중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짐해 봅니다. — 더딘 걸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늘 '못된 사람'이겠지만 꾸준히 '되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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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오전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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