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브랜드' 해방일지 ] 01.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극중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결속한 이른바 '해방클럽'의 규칙 중 하나입니다. 애써 행복하게 보이려는 노력도, 그렇다고 스스로 자꾸 불행을 주워 입는 행위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정직한 자세로 삶을 대하겠다는 뜻이겠죠. 02. 과격한 늬앙스를 전달할 의도는 없습니다만 사실 우리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한편으로는 해방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브랜드는 너무 잘하고 있어서 변화를 줄 것도 없고 딱히 받아들일 것도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브랜드 매니저가 몇이나 될까요? 아니 세상에 그런 브랜드 매니저가 존재하기는 할까요? 어떤 식으로든 우리들 브랜드의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결국 수명을 갉아먹는 요소들을 과감히 도려낼 줄 알아야 하고, 외부로부터 몰아치는 풍파도 온몸으로 막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책상에 앉아 사사분면과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며 '우리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것만이 브랜드 관리자의 역할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03. 저는 브랜드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브랜드와 정직하게 마주 설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애정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감이나 이른바 '-뽕'과도 별개의 문제이고요. 내가 다루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것과 그렇기에 더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마음가짐은 '내가 얘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관점과 이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우리 브랜드를 매일 다른 브랜드 속에 던져보고 또다시 건져 올리기를 반복하며 '진짜 우리 다운 게 뭘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하는 게 가장 솔직한 자세라고 봅니다. 04. 그러려면 드라마의 대사처럼 행복한 척도, 불행한 척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례가 브랜드가 스스로의 가치를 투영하지 못하고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개인적인 가치관만을 투영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떤 브랜드들을 보면 저들이 하는 얘기가 도통 무슨 얘기인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도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끼리는 행복에 겨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이 세상에 나왔는지 그 성장 이야기와 이전의 수많은 실패 사례를 담아 전달하기도 하죠. 05. 물론 요즘의 브랜드들이 브랜드 그 자체보다는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는 걸 더 중요시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우리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업데이트하는 것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소한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일수록 적절한 전략과 도구와 타이밍을 고려해야지 자꾸 어느 한 사람의 보이스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 브랜드도 사라지는 거니까요. 06. 뜬금없지만 '해방'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무엇인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해방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가두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도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든 브랜드든 어떤 프레임을 하나 쓰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 지금은 성장하는 과정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 지금은 예산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이만하면 이런저런 브랜드들보다는 낫지 뭐', '처음부터 내가 만들었으면 이 지경은 안되었을걸' 같은 프레임을 쓰고 시작하면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를 나조차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럼 내가 브랜딩 한 대로 바라봐야 하는 소비자나 팬들은 더 왜곡된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요. 악순환도 그런 악순환이 없는 거죠. 07. 그러니 여러분의 상황과 감정을 브랜드에 대입하기 전에 우선 브랜드를 있는 그대로 대하는 연습부터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 그대로 요즘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고 추앙 정도는 받아야 의미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사랑은 콩깍지로도 가능할지 몰라도 추앙은 그 존재 자체를 오롯이 이해하고 거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08. 말 나온 김에 대사 한 구절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경기도 외진 곳에 사는 삼 남매가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자, 막내 여동생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난 어디서나 똑같을 것 같은데, 어디서나 이랬을 것 같애.' 09. 네. 우리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 어디서, 어느 브랜드를 맡는다고 해도 (또 만든다고 해도) 비슷한 결과가 초래될 겁니다. 그러니 브랜드를 해방시키기에 앞서 브랜드를 만드는 우리의 낡은 프레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이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기에 앞서 저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제목부터 '나의 브랜드 해방일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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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7일 오후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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