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경험을 기억하는 방법

01. 바야흐로 공간의 시대입니다. 코로나 방역조치가 완화되면서 억눌러있던 욕구가 터진 탓도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오프라인 공간들에 대한 욕심과 환상이 불타오르는 지금이죠. 그래서 이번 달 독서모임에서는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 (정은아 지음)'라는 책을 중심으로 요즘 시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02.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는 공간들에는 어떤 이유가 녹아있는지부터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바뀌어갈 공간 트렌드와 특정 브랜드의 공간을 기획해 본다면 그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까지 공간에 대한 디깅 토크를 이어갔거든요. 03. 재미있는 건 멤버분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공간을 설명할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방역 수칙 상 모임에선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공간을 이야기할 때의 표정은 마치 지금 당장 그 공간에 머물고 있는 듯한 들뜬 모습들이 자주 보였거든요.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가 존재하지만 역시나 오프라인 공간이 전해주는 감성과 경험은 또 결이 다르고 그 깊이가 다르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04.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저는 좋은 경험이 빨리 휘발되는 것을 매우 아까워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방문했을 때 그곳이 주는 경험 역시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죠. 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사진을 찍고, SNS에 기록하고, 때론 아카이빙을 해놓기도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간이 주는 경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05. 그건 제가 방문한 공간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는 일입니다. 즉, RE-NAMING을 해보는 것이죠. 크게 어려운 과정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그 공간에서 감동한 포인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고, 이로 인해 정의된 경험에 어떤 이름을 붙여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뿐이거든요. 06.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포인트'입니다. 그 공간 전체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나를 움직인 포인트에 더 집중해 보는 거죠. 어떤 공간은 낮에는 큰 임팩트가 없지만 밤이 되면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많을 때는 매력이 반감되지만 혼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시간대에는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처럼 기능하는 공간도 있죠. 음식 맛보다 배경음악이 더 좋은 식당도 있고, 지인이나 친구들 중 꼭 이 사람과 방문해 보고 싶다는 공간도 있고요. 07. 그럼 그 포인트를 딱 떼어내어 그 공간이 주는 경험에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갸우뚱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받은 경험을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으로는 꽤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되거든요. 가끔씩은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나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해봐도 재미있는 시도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08. 저는 경험을 네이밍 하는 것이야말로 기획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네이밍 그거 다 결과론적이다.. 성공하고 나면 이상한 이름도 좋아 보인다'라고 할 수 있겠죠.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여본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수없이 시뮬레이션하며 이게 좋은 이름일지, 잘못된 경험을 전달하지는 않을지 스스로 체크해 보게도 되고요. 무엇보다 여러 요소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그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버리고 또 버리는 연습도 할 수 있습니다. 09. 그러니 이번 주말 괜찮은 카페를 발견해서 아주 열심히 아이폰 셔터를 눌러대셨다면 이번엔 나를 움직인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 공간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 건 어떨까요? 그럼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훨씬 생생하고 의미 있게 기억될 테니 말이죠.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2년 11월 20일 오후 1:47

 • 

저장 15조회 1,88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