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이거의 귀환을 보며 생각한 것들

오늘 가장 놀라웠던 뉴스는 밥 아이거의 복귀였다. 순간 만우절 장난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소식.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현지 시각으로 일요일 밤에 디즈니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고. 디즈니의 경영진 중에서도 이메일로 이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이사회에서 얼마나 극비로 빠르게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단, 밥 아이거의 임기는 2년으로 짧다. 현재 디즈니가 겪는 혼란을 잠재우고 다음 리더십을 선임하기 전까지 Interim CEO 에 가까운 것 같다. 밥 아이거가 쓴 책, The ride of a lifetime/디즈니만이 하는 것은 2020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자,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자서전/경영서적 Top 10권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책이다. 코로나가 시작한 첫해, 여름 휴가 중에 부산에 가져가서 읽으며,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깨달음은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하지만, (그리고 읽은지 2년이 지났기에 지금 다시 읽으면 새로운 대목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당장 단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밥 아이거는 자신에게 대단히 충실한 사람이었다. 더 멋지게 보이려고도, 더 강하게 보이려고도, 굳이 애쓰거나 젠체하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의 CEO라 할 때 흔히들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는 그런 모습에 자신을 맞추거나 그런 척(pretend랄까) 하지 않았다, 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는 평온함과 침착함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타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감싸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세련된 전략과 날카로운 숫자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혹은 협상을 해야 하는 상대방의 내면을 살피며,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물론 40년 이상 한 조직에 몸 담으며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라서 15년 이상 일한 사람이 가진 철두철미함은 엄청난 것이겠지만, 그는 티를 내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 좋게 웃으며 인간적인 약점도, 매력도, 솔직히 드러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함을 상대에게 전한다. 이 때문에 그는 재임기간 중 역사적인 M&A 들을 여럿 성공시켰고, 스티브 잡스와 최고의 사업 파트너이자 최고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잡스의 장례식장에서 부인이 밥 아이거에게 해 준 이야기는 언제나 읽어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밥 아이거가 물러난 후, 밥 차펙이 CEO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선임이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실 밥 아이거가 후임으로 밀었을, 본인의 후계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케빈 메이어였을텐데, 이사회는 디즈니랜드 사업을 이끌었던, 비용절감과 오퍼레이션에 능한 사람을 CEO로 결정을 한다. (이후 케빈 메이어는 회사를 떠났고, 틱톡 USA CEO로 취임했다가 두달만에 물러나게 된다.) 암튼, 밥 차펙은 밥 아이거와 매우 다른 커리어 히스토리를 가졌고, 사람으로서 캐릭터도 차이가 큰 편이라 디즈니 이사회가 신선한 베팅을 하고 싶었나보다 싶었지만… 코로나가 끝나가고 전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의 대혼돈을 겪고 있는 시기에 밥 차펙은 적절한 리더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시기에 디즈니에 필요한 사람은, 디즈니가 가진 유산을 보호하고, 미래를 팀에게도, 주주에게도, 고객에게도 유연하게 잘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가면서 신뢰를 얻고 시간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밥 아이거는 노련한 구원투수로서 등판을 한 셈. (권오현 회장님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리더로 복귀한다면 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3년 전 떠난 자리에 다시 되돌아와 달라는 (아마도 간곡했을) 요청을 받고, 이를 (아마도 선선히) 수락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밥 아이거는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역시 최고다.

Walt Disney Names Bob Iger CEO, Replacing Bob Chapek

WSJ

Walt Disney Names Bob Iger CEO, Replacing Bob Chapek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2년 11월 21일 오후 4:22

 • 

저장 66조회 4,727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