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의 게임 시스템과, 이 시대의 데이터의 의미

데이터란 무엇인가. 현실의 단면을 특정 기준에 따라 정의, 측정, 기록한 결과가 데이터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관측하고, 그 관측들에서 공통된 패턴을 추출하고, 그 패턴을 정제하여 우리가 무언가 배울 수 있는, 혹은 우리의 근원적인 무언가가(마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란 형태로 기록한 것이 소설이다. 따라서, 소설이란 것 자체가 작가가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그 관찰된 것들 사이에서 추출한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패턴이기 때문에 소설은(특히 장르문학은) 현시대의 욕망과 그 욕망의 합의가 이끄는 시대의 흐름을 함의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전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 같은 지금 바로 이 시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장르 문학에 사용되는 소설적 도구들은 (예를 들와 회기 라던가, 게임 시스템 이라던가, 탑을 오른다던가 등등) 현시대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판타지 소설 속 "게임 시스템"이란 게임에서 적용되는 스테이터스를 통한 캐릭터의 특성 및 강함 측정, 행동에 따른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레벨업, 스테이터스 상승 등), 현 상황에 대한 "퀘스트 창"을 통한 명확한 설명 들이 현실의 주인공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가상의 설정이다. 그렇다면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필수 조건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의 판타지 장르물에서 자주 쓰이는 이 단순하고도 익숙한 "게임 시스템"이 우리에 적용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인공에게만 적용된다는 설정은 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런 게임 시스템은 근간인 "데이터화"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무엇을 의미할까 1.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에 대한 측정 기준, 그리고 편리한 측정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중 하나는 나와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상태인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와 그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에서 나는 더 뛰어난지, 그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등등, 우리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서브적 인격들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부캐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현 상태에 따라 내가 아닌 나를 표현한다. 그것은 나일까 아니면 나의 일부분의 표현일까? 이러한 일부분들의 합이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수많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랜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상황에서 그 사람을 관찰해야만 그나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의 게임 시스템은 이러한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 사람의 현 상태와 기질을 몇몇 가지 기준으로 종합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혜 : 10(한계:40) , 민첩 : 25(한계:50), 재능 : 예민한 예술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는 매우 신(GOD) 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인간 모독적이다. 예를 들어 지혜가 1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보통 사람의 1/10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단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보통 사람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대해 알고 있어야 이러한 수치를 매길 수 있다. 이런 전지적이고 전능적인 것을 게임 시스템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러한 게임 시스템을 적용받고 또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 시스템을 통한 나와 상대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 그리고 그것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욕망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평가"를 해소해준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절대적이고도 전능적인 시점에서 평가받고, 또 타인을 평가하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평가가 객관적인 데이터라는 형태로 표현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아닐까? 즉, 지금 이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결핍은 다른 사람들, 심지어 나에 대해서 조차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즉각적인,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보상, 그리고 자기 개변 모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나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공부를 열심히 안다고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일을 열심히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성공의 필수 조건일 뿐, 단 하나의 저건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다르다 공부를 하면 지능이라는 스테이터스가 올라서 머리가 똑똑 해지고, 성과를 올리면 그에 따라 특별한 무언가가(마법의 물약 이라던가) 보상으로 주어지고, 싸우면 레벨이 올라가서 우리의 재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즉, 게임 시스템은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보상을 즉각적으로 주고, 그 보상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비해 매우 특별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조차 준다. 노력이 바로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따라 보면 매우 공정해 보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보상이 다른 과정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에서 (그것도 게임 시스템의 임의대로!) 매우 차별적이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보면, 우리의 욕망이 무엇인지 살짝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성과로 바로 나타나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더 뛰어나고 강력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것이 적용되면 우리는 "특별"할 수 없으니, 이 시스템이 나에게만 적용되던가, 아니면 게임 시스템이 나에게만 어떤 특별한 무언가를 주기를 바란다. 즉, 우리는 특별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 특별함은 언뜻 보기에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이 무슨 모순적이면서 당연한 사람의 욕망인가 3. 수치(데이터)는 믿을 수 있다 후각, 시각, 청각, 느낌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전달될 수 있다. 즉, 꼭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수치의 형태로 전달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이 썩은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배경이 검은색처럼 보인다는 설정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주인공에게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수치"의 형태로 그 사람을 측정하고 관찰하기 바라는 것일까? 현시대의 사람들, 특히 학생들은 수많은 수치 속에서 살아간다. 시험 성적, 공부 진행률, 내신 등급 등등 수많은 수치들이 우리를 측정하고 정형화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평가 형태가 바로 "수치"라는 것이다. 물론 이 "수치"는 절대적으로 옳은 경우는 거의 없다. 시험 성적은 나의 미래에 대한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고, 학습 진행도는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배웠는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수치" 자체가 잘 못된 기준에 따라 측정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깊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니다. 그냥 그 수치라는 형태가 우리가 보기에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게임 시스템이라는 전지적이며 일부 전능적인 무언가가 수치로 사람들을 축정 해준다는데, 어떤 불만이 있겠는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평소에 행하는 수많은 "수치화되지 않은" 평가에 대해 불신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면접에서 왜 제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지는가.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제는 왜 인정을 받고 나는 그렇지 않은가. 임원은 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왜 보상을 많이 받고 나는 적게 받느가. 내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치화되어 정형화된 정보에 근간하지 않은 모든 평가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 평가되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가, 그런 수치가 존재하지 않는 회사 및 사회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가지고,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 수치로 모든 것을 측정하는 게임 시스템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 : 우리는 세상 살기 힘들고 불공평 하니, 나 대신 누군가 세상을 공정하고 간편하게 (하지만 나는 특별히 대해주면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더 덕쿠스러운 글은 뉴스레터로 전달하고 있다 링크 : https://bit.ly/3hy8Y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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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8일 오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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