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우리 책방의 북토크 주제는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그의 글과 사유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추운 날에도 책방을 가득 메웠는데 진행을 본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책에서 고단한 노동과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긴 여가 시간을 확보하면 되는건지 질문을 던지셨는데, 요즘 MZ세대들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는 시간, 그 긴 여가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지금은 노동의 피로에 찌들어서 일하지 않는 여가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 보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그의 답을 듣는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졌다. ‘어떻게 사는가’는 결국 ‘무엇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로구나.
며칠 후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온다. 나는 올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고,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
어디 올 한 해뿐이랴. 지금껏 살면서 했거나 하지 않은 일, 서둘렀거나 늦어버린 일, 도전했거나 회피한 일, 좋아했거나 싫어한 것, 나의 지금 하루하루는 그것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중년 고개를 넘으면서 몸의 여기저기가 아팠는데 병원에 가도 잘 낫지 않았다. ‘명의’를 소개받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다지 효험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 알아차렸다.
나의 병은 대체로 만성인데 그것은 어느 날의 갑작스러운 발병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내가 그렇게 산 결과임을. 그러므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나 스스로 사는 방식을 바꿔야 만성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쁜 짓을 하느라 그렇게 산 게 아니었다. 늘 중요한 뭔가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것에 응했으며 그 우선순위를 받아들였다. ‘공(公)’을 ‘사(私)’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일을 ‘공’으로 여겨 몰두했고 지금은 수십 년 그런 시간이 남긴 ‘내 삶의 무늬’를 감당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의 매듭을 짓는 시간 앞에 서서 나는 내년에, 또 앞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감당하려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내게 와 묻는다. 제각각 처한 상황을 말하곤 “제가 지금 이직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하지만 이런 건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답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답 대신 질문을 돌려준다.
너는 무엇을 감당할 건데? 기회는 많지만 연봉은 좀 적은 곳, 안정적이지만 재미는 없는 회사, 가슴은 뛰나 미래는 불확실한 창업…이 중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감당하려 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1년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