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영상은 멘케스 증후군에 걸린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유튜브와 구글, 600여 편의 의학논문을 뒤져가며 세상에 없는 치료제를 만들어버린 쉬 웨이 씨의 이야기다. 쉬 웨이 씨는 박사도 아니고 유수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닌 고작 고졸 출신의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이해도 잘되지 않는 논문들을 몇 백 편씩 보고 단어 하나씩 번역해가면서 이토록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간절함이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일념 하나로 임했던 것이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학위와 학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다시 돌아갈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을 쳤던 것이다. 결국 얼마나 간절한가가 의지력과 행동력을 결정한다. 쉬 웨이 씨의 이야기에서처럼 간절함 앞에서는 문과냐 이과냐, 석사냐 박사냐 따위의 것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할 때만 해도 나는 퀀트의 퀀자도, 파이썬의 파자도 모르는 한마디도 일자무식의 문송한 양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제도권 금융에서 퀀트 트레이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간절함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간절하면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개나 주고,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달려가서 물어보게 되고 배우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한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야말로 간절함의 증표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데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부끄러움이다.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은 나이와 출신, 학벌을 불문하고 전부 나보다 형님이다.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이 바로 내 전공이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좀 도와주십쇼!" 2023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희망찬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작년도 재작년도 그랬듯 이렇게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가 채 될까 말까다. 그 이유는 별거 없다. 그렇게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Good Enough' 즉, 이미 자신의 삶이 충분히 좋고 목표를 이루지 않아도 내 삶에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루지 않아도 밥을 굶는 일이 없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현실이 충분히 좋기 때문에 간절함을 느낄 새가 없다. 퀀트의 영역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리스크 프리미엄이란 단순하게 말해 어떤 위험을 떠안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효익을 의미한다. 나는 이러한 리스크 프리미엄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간절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정규직보다는 용병 집단인 1년 계약직, 월급쟁이보다는 사업가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가 배수진을 치고 리스크 프리미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리스키한 상황에 처넣는 사람들은 매일 생존과 몰락의 기로에 놓여있다. 내가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으면 내일 내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리스크를 테이크 하는 만큼 보다 간절해지고 또 간절하기 때문에 후퇴는 없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게 된다. 그들의 학습 곡선이 남들보다 훨씬 더 가파른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간절함 때문에 한 주를 한 달처럼 한 달을 일 년처럼 살기 때문이다. 시간의 상대성은 간절함의 함수다. 프랍 트레이딩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의 손익이 중요하며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진다. 작년에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새해가 되면 다시 손익이 제로로 돌아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다. 또다시 올 한 해를 살아내어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게 쫓기듯 사는 인생이 과연 좋은 인생이냐고 이를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러한 불확실성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은 스스로 간절함을 만들어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환경만이 인간을 간절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쉬 웨이 씨의 아들이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그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불확실성은 오히려 축복이다. 불확실성이야말로 성장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삼성이 백날 천날 위기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도 위기 상황에 처해 있어야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발전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아주 냉혹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나는 얼마나 간절한가?' '나 자신을 불확실성에 던져 넣을 준비가 되었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듯, 생각과 꿈을 현신케 하는 것은 오직 행동력이다.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동하자.

퀀트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얼마나 간절하니?

Brunch Story

퀀트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얼마나 간절하니?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지금 간편 가입하고 다음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3년 1월 2일 오후 11:0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