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만에 읽은 멋진 인터뷰 한 토막. 때로는 | 커리어리

간 만에 읽은 멋진 인터뷰 한 토막. 때로는 이런 진심이 더 울린다. ―지금까지 수리한 만년필이 몇 개나 되나요. "매주 의뢰가 들어오는 만년필이 100개 정도 됩니다. 간단한 건 3분 만에 수리를 끝내고, 수리가 어려운 건 몇 달씩 묵혀두면서 연구해요. 여태 제가 고친 만년필이 2만 자루는 훌쩍 넘죠." ―원래 만년필 수리가 업이었나요. "아뇨. 전 평일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만년필 수리는 독학한 거예요. 대학생 때 쓰던 만년필을 몇 번 수리점에 맡겼는데, 성에 안 찼어요. 자세히 뜯어보면 미세한 상처가 나 있거나, 균형이 틀어진 경우가 많았죠. '이럴 바엔 내가 직접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헌책방과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모으면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설계 도면이나 수리 도구부터 브로슈어, 고서적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였죠. 제가 좋아하던 '파카51' '펠리칸 M100'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100년 전에 출시된 만년필까지 섭렵했어요." ―수리비를 안 받는 이유가 있나요. "제 목표는 의뢰받은 만년필을 더 이상 건드릴 것 없는 최상 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내 손을 거친 만년필이 완벽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희열을 느낍니다. 돈을 받기 시작하면 빨리 다음 만년필을 고쳐야 된다는 생각에 만년필을 제대로 볼 수 없어요.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튼, 주말] 만년필 사랑 40년… 2만 자루를 무료로 고쳤습니다

Naver

2020년 7월 20일 오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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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기사이네요. 1. 실업고와 전문대를 졸업하고 1997년 병역특례로 입사한 이 대표는 3년여 일하면서 종자돈을 모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병특요원 첫 월급이 40만~60만원 하던 때에 그가 모은 돈은 4000만원 가량. 월급이 오르고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다. 주로 읽은 책은 자기 계발서와 주식 투자와 관련된 책이었다. 2. 그가 생각한 선택지는 3가지였다. 원양어선, 도예촌 보조, 모텔 일.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모텔 청소 일은 그때 시작했다. 이후 매니저, 총지배인 일까지 맡게 됐다. 이 와중에 샐러드 배달 사업도 시도했다. 실패였다. 시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시기다. 3. 우연한 기회에 이 대표는 숙박업소 이용후기 카페를 운영하게 됐다. 그는 숙박 정보를 소비자에 제공하고 업주에는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거듭된 실패와 경험이 노하우가 됐다. 이때부터 그의 사업은 본궤도를 탔다. 오늘날 야놀자 사업 모델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워낙 어렵게 살았으니까 악이나 깡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덕분에 거듭된 실패에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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