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은 이제 '인맥 집약 산업'

대한민국 자영업(주로 외식업) 시장은 IMF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직자가 대거 자영업 시장으로 유입되며 당시 자영업자가 2~3년 만에 100만명 가량 급증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난립했고, 경기 침체로 상권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며 '핫플레이스' 현상이 생겨났다. 그 전에는 모든 상권이 활황이었다면, 이후 골목상권이 지고 강남, 명동, 홍대 등 잘 되는 데로만 돈이 몰렸다. 뜨는 상권과 입지에서 뜨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면 대박 나는 성공 방정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노동 집약' 산업이었던 자영업 1.0에서 '자본 집약' 산업인 2.0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러 대한민국 자영업은 3.0 시대로 접어들었다. 배달앱, SNS 등 온라인 마케팅 트렌드를 못 따라가면 살아남을 수 없는 '기술 집약' 산업이 됐다. 그런데 요즘은 기술도 평탄해졌다. 누구나 쓰는 배달앱, SNS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젠 새로운 트렌드에 먼저 올라탈 수 있게 이끌어주는 '인맥 집약' 산업이 됐다. 그 이전 버전의 자영업자들이 그랬듯, 4.0 시대에 적응 못한 3.0 자영업자는 도태될 것이다. 자영업 1.0 노동 집약 자영업 2.0 자본 집약 자영업 3.0 기술 집약 자영업 4.0 인맥 집약 외식업이 인맥 집약 장사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1. 요즘 인기 프랜차이즈인 '달래해장'은 삼각지 맛집 '몽탄' 사장과 신논현 맛집 '혜장국' 사장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새 브랜드다. 2. 미쉐린가이드 1스타를 받은 코자차의 최유강 셰프는 신라호텔 출신 친한 셰프와 동업으로 창업한 지 2년 만에 별을 따냈다. 여기에는 노브랜드를 브랜딩한 김기영 숙명여대 교수의 기획이 한몫했다. 3. 최유강 셰프는 중국에서 요리 연수 하던 시절 친해진 중국, 싱가포르 셰프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트렌드를 주고받는단다. 싱가포르에서 뜨는 핫한 메뉴를 한국에서 누구보다 먼저 선보이는 비결도 인맥이다. 4. 한 프랜차이즈 대표는 연간 수백만원씩 받고 전국에서 수백명의 다점포 점주를 컨설팅하고 있다. 이들은 대표한테 컨설팅만 받는 게 아니고 서로 인맥을 공유받는다. 그리고 수시로 만나 세미나를 하고 좋은 강의를 추천하며 서로 투자, 동업도 한다. 사실 그들 한명 한명도 다른 외식업자를 컨설팅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맛집 사장들이다. 내가 만난 한 사장은 "매달 매출의 약 3%를 '공부'에 쓴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네트워킹 비용도 포함돼 있다. 5. 장사 인맥에도 어떤 '룰'이 있다. 한 프랜차이즈 대표는 "동종업종 사장은 가급적 안 만난다"고 말한다. 나중에 어떤 새로운 걸 시도하면 "내 꺼 베꼈다"며 태클을 걸기 때문이란다. 오해의 여지를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는 외식업계의 '펜스룰'이다. 요즘 외식업자들은 이렇듯 적극적으로 가게 밖으로 '출타'한다. 가게 안에만 있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생존, 성장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만큼 외식업 트렌드가 빨리 바뀌고 있고, 그 트렌드의 영감을 주는 존재는 결국 타인이라는 방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상공인은 가게 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 낸다. 약 80%가 1인 자영업자라서 가게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이 없어 가게를 못 비우고, 그래서 장사가 안 되고, 그래서 또 직원을 못 두는 악순환. 가게를 비우고 시장 조사를 할 수 있는가, 트렌드 정보를 주고 받을 '아는 사장'이 있는가는 '인맥 집약' 자영업 4.0 시대의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충북 대소에서 40년 넘게 순대국집을 하고 계신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노동 집약형 자영업자다. 그나마 서빙하는 누나가 옆에서 재난지원금이나 각종 지자체 지원금을 신청해주니 까막눈은 면하신다. 어머니 같은 1.0 자영업자도 수십만명, 2.0, 3.0 자영업자도 각각 수십만명은 될 게다. 모두 도태가 진행중이다. 모두를 돕고 싶었다. 내가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4.0 자영업자를 1.0~3.0 자영업자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9월에 매경 사내벤처로 창업 컨설팅 플랫폼 '창톡(ChangTalk)'을 설립했다. 프랜차이즈 대표, 1등 점주, 다점포 점주, 미쉐린가이드 셰프 등 전국의 장사 고수 수백명이 예비·초보 자영업자와 1:1 코칭을 해주는 장사 노하우 품앗이 서비스다. 오는 3월 오픈 베타, 2월 랜딩페이지를 오픈한다. 인접 상권에서 같은 업종으로 장사에 성공한 선배 자영업자들이 일타강사로 나선다. 이들의 도움으로 생존하고 성장한 자영업자들이 장사 고수가 되어, 다시 후배 자영업자를 돕는 선순환을 꿈꾼다. 미국발 금리 인상에 세계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IMF외환위기 때 그랬듯, 또 얼마나 많은 실직자가 쏟아져 자영업자가 될까. '정글'에서 '지옥'으로 온 그들의 분투는 또 얼마나 처절할까. '인맥 집약' 자영업 4.0 시대에 1.0~3.0 자영업자들이 '우리 동네 백종원'과 쉽게 만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도록, 창톡이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청년층의 '과소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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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3일 오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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