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70점

01. 얼마 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 네버 스타터(Never Starter)'에 관한 글을 썼더니 적지 않은 분들께서 DM을 통해 '그럼 잘 시작(?)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질문의 늬앙스 또한 '저희가 시작하는 게 중요한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머리론 이해해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않아요'라는 게 주된 요지였죠. (이 글은 아래 댓글로 링크 추가 해놓았습니다 🙂) 02. 사실 '시작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굳이 쓰지 않은 건 개인적인 방식을 제안하는 게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더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상황이 모두 다르고, 또 각자가 가진 리듬감과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 방법론을 하나 들이민다는 게 자칫 오해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03. 하지만 몇몇 분들의 질문이 응원으로 작용했나 봅니다. 문제를 던진 만큼 나름의 답도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시작하는 법'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 목표는 70점이다'라는 생각으로 출발합니다. 주위에 이런 얘기를 하면 의외라는 분들도 더러 있었지만 저는 실제로 1차 목표를 70점으로 잡습니다. 이건 70점이라는 숫자가 개인적으로 상징하는 분명한 바가 있기 때문인데요,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해야 할 건 했다는 의미를 가늠하는 척도가 딱 이 70점 정도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04. '기획한다는 사람이 100점이 아니라 120점을 목표로 잡아도 모자란데, 70점이 웬 말이냐' 싶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1차 목표입니다. 우선 70점짜리부터 만들어 보고 나서 그다음 2차 목표를 설정해 보는 게 속도면으로나 완성도면으로나 꽤 저에게 잘 맞는 템포가 되더라고요. 05. 사실 저는 학창시절 치르는 시험보다 어쩌면 회사 생활에서 주어지는 일들이 덜 가혹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래도 회사는 내가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만회할 기회를 주는구나'라는 사실이었죠. 시험은 1차에서 70점을 받았더라도 2차에서 100점을 받아야 평균 85점이 되는데, 회사는 우선 1차에서 70점을 빨리 만들어 놓고 남은 시간 동안 디벨롭하고 완성도를 다듬으면 오히려 꽤 빠르고 또 비교적 쉽게 100점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06. 그러니 저는 First Half(전반전)에서 빠르게 70점을 만들어 놓고, Second Half(후반전)에서 남은 30점을 채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럼 Second Half를 맞이할 때는 큰 조급함 없이 좀 더 넓어진 시야로 내 작업물을 대할 수 있을뿐더러, 70점이라도 만드는 그 과정에서 느낀 부족함과 어설픔을 어디서부터 메워나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07. 사실 뭔가를 잘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금 요상한(?)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저 역시 종종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볼링을 치는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볼링공을 들고 레인에 선 순간은 모두가 스트라이크를 바라는 심정으로 공을 굴리게 되죠. 하지만 프로급 실력이 아닌 다음에야 이 스트라이크라는 게 참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아실 겁니다. 실제 프로들도 늘 실수를 하는 법이고 말이죠. 08. 대신 볼링 게임에서 사용하는 '초구'와 '스페어'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한 프레임 안에서 주어지는 두 번의 기회는 초구와 스페어로 구분되는데 초구에서 10개의 핀 중 7개를 쓰러뜨렸다면 다음 기회에 이 3개의 핀만 처리해도 꽤 성공적인 프레임을 만들 수 있거든요. 하물며 우리는 조금 일찍 시작해 남들보다 빨리 초안을 만들어 놓으면 한 프레임 안에서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거죠. 09. 하나 덧붙이자면 이 70점이라는 1차 목표는 개인이 뭔가를 시작할 때뿐 아니라, 협업을 통해 다 함께 시작해야 하는 순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제가 리딩하는 역할의 프로젝트를 맡을 땐 협업하는 동료나 구성원들에게 되도록 1차 목표인 70점의 기준과 그 기준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산정해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럼 긴장감과 부담감은 낮아지고, 속도와 유연함은 오히려 증가하더라고요. 무엇보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우리에겐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는 그 공감대가 커지는 게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10.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주저리주저리 써놨지만 솔직히 저는 앞으로도 이 패턴을 잘 유지해가려고 계속 노력하지 않을까 싶어요. 성실함이라는 건 꾸준히, 차근차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론 남보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하고 조금 더 많은 수정의 기회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그러니 여러분도 이 말을 스스로 자주 되뇌여보면 어떨까요. '일단 우리의 목표는 70점이다!'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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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8일 오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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