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히스토리를 관리하는 게 중요한 이유

01. 주말에 있었던 모임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시는 제 지인분이 이런 이야기를 화두에 올렸습니다. '작은 회사는 브랜드 담당자나 디자이너가 자주 들고 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브랜딩의 방향이 휙휙 바뀌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02. 사실 꽤 중요한 고민이자 질문이죠. 꼭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브랜드를 담당하는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있는 일이거든요. 게다가 체계적으로 브랜드 자산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아니라면 (물론 갖추고 있어도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지만요) 회사의 크기를 막론하고 사람에 의해 브랜딩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03. 저는 그럴 때마다 '브랜딩 히스토리 관리'를 강조합니다. 브랜딩 히스토리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 워딩 같지만 쉽게 말하면 그동안 우리가 브랜딩의 방향을 작게나마라도 수정해온 그 발자취를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입니다. 크게는 로고나 심볼의 변화부터 작게는 브랜드 워딩의 수정까지, 우리가 기록하고 담아둘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의 히스토리로 관리하는 것이죠. 04. 사실 대부분의 BO (Brand Owner)나 BM (Brand Manager)들은 과거의 유산을 빨리 지우고 싶어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 한 이 브랜드 이미지가 빨리 고객들에게 인식되어 잘 정착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치 디지털 장의사 수준으로 이전의 자료들을 빠르게 지우고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제품과 컨텐츠들도 전환 속도를 앞당깁니다. (그리고 이게 맞습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05.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브랜드를 관리하는 내부에서는 우리가 왜 이런 방향으로 브랜드를 업데이트하고 있는지 그 역사를 트래킹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상황에 도달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중요시했고 무엇을 버렸는지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마치 사이클처럼 반복되는 'Opposite Design'의 굴레에 빠지지 않게도 해주죠. '저번에 화려하게 했으니 이번엔 심플하게 가자', '저번엔 심플하게 했으니 이번엔 화려하게 가자'는 식의 쳇바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겁니다. 06. 그리고 아까 서두에서 얘기했던 브랜드 담당자의 변화에도 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저도 브랜딩 업무를 하면서 겪는 일이지만, 가끔 BO나 BM에게 과거 브랜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료를 좀 보여줄 수 있냐고 물으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과거의 자료가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보이는 반응이죠. 예전 브랜딩 결과물 하나를 집어서 '이건 어떤 부분을 강조하시고자 한 걸까요?'라고 물으면 '아유 이건 제가 진짜 완전 초창기에 아무것도 모를 때 한 거라...' 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하거든요. 07. 하지만 과거 결과물의 퀄리티가 어떻든, 그 방향이 옳았든 그렇지 않았든 그것을 우리의 유산으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브랜드 히스토리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탐험을 하면서 우리가 잘못 들었던 길을 지도에 표기해두지 않는 것과 같거든요. 뒤늦게 출발한 우리 대원들이 효율적으로 올바른 길을 통해 올 수 있게끔 해야 하는 게 선발대의 역할이라면, 브랜드 히스토리를 숨기는 건 직무유기와도 다를 바 없으니까요. 08. 그러니 혹시 브랜드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시라면, '그냥 처음부터 내 브랜드를 만든다 생각하고 한 번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라는 말보다는 '저희는 이런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고, 그 안에서 이런이런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요건데 여전히 그 부분이 100% 구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디렉팅으로 새로운 브랜딩 담당자를 맞이하는 게 맞습니다. 09. 겉으로 보기엔 개인기의 영역 같지만 브랜딩이야말로 팀플레이거든요. 교체로 그라운드에 들어간 멤버에게 지금의 상황을 브리핑해 주는 것은 매너의 수준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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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5일 오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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