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

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란 뭘까. 워라밸 좋은 직장? 돈 많이 주는 직장? 그럼 남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은 따로 있는가. 1:1 세션에서 만난 A는 빡세기로 소문난 핀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PO로, 이제 막 3살 된 딸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동료들이 가끔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만 놓고 나와도 하루종일 눈에 아른거리는데, 아이 놓고 나와서 일하기 힘들겠어요" 건네는데, 자신의 빡센 일과 삶을 위로하는 동료들의 진심을 알면서도 가끔 '나는 진정 모진 엄마'인가..싶을 때가 있다고. 생각 끝에 그는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거나, 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프리랜서를 다음 경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남자분들한테는 아이 놓고 나와서 어떻게 일하냐 질문 같은건 거의 하지 않잖아. 상대방에게 상처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말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걸 나도 생각 못했네. 의례 '여자가 일하기 좋은 직장' 은 너무 바쁘거나 빡세지 않은 적당한 일, 편안히(?) 쭉 다닐수 있는 회사, 워킹맘의 경우 아이를 돌보기 위한 '빠른 퇴근'이 가능한 곳을 칭한다.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다수는 일하며 아이를 케어하는 주체도, 무슨 일이 생기면 튀어가는 사람도 '여성'인 경우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그런데 정말 이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여자든 남자든 결혼을 했든 안했든 아이가 없든 있든 일하기 좋은 직장이란 내가 일할 이유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느라 때때로 바쁘고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고 가족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곳.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해 왠지 모를 미안함이 자꾸만 마음속에 남는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일인데! 할만큼의 의미와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돈이든 성장이든 영향력이든 뭐든, 일하는 이유가 선명할수록 나 스스로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까. 내가 해야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잘 해내고, 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하는지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와의 시간을 밀도 있게 행복하게 잘 쓰려고 애쓰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좋다는 생각. 자신한테 솔직해질 필요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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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8일 오전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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