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포지셔닝: 나의 가치를 만드는 방법

알게 모르게 인간은 기존의 사회적 정체성과 스크립트와 관계맺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모범생이나 반골기질을 들 수 있는게, 이런 관계습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범생은 어딜 가든 예쁨받고 빛나기 위해 정론적인 얘기, ‘맞는’ 얘기를 하게 된다. 반골 기질은 어딜 가서든 ‘그거 좀 아닌데?’라는 식으로 말하게 된다. 내가 보기엔 관계의 맥락에서 누군가가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역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역할은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고 유형typology을 뽑아볼 수 있을텐데, 오늘은 내 경험에 기반해 가치를 만드는 포지셔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나는 항상 딴소리를 하는 습관이 있다. 대학원 세미나에서 훈련된 것 같은데, 정말 똑똑한 인간들이 모여서 교수님께 예쁨받으려고 인정투쟁하는 장 속에 빛나기 위해서는, 내 경험으로는, 모범생 같은 정답은 큰 의미가 없다. 다들 하고 있는 생각이고,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려면 논리나 논증이 매우 완성도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레드오션이자 유한게임이자 포화시장인 것이다. 본래 좀 메타적인 걸 좋아하고, 가정의 근본을 뒤집거나, 죄송한데 그거 왜하냐고 반문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나는 ‘저격수’의 포지션을 잡게 되었다. 다들 정답경쟁을 하면서 레드오션에서 피터질 때, 라운드1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사격을 시작한다. 근데 그거 가정이 맞아요? 맞다고 해도 그거 뭐 어쩌라는 거죠so what? 거기에 이런 새 변수를 넣어서 보면 어때요? 내 나름대로는 유효한 전략이었고, 뒤돌아보면 그 후로도 난 계속 ‘안티-포지셔닝’을 취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비즈니스 맥락에서는 근본 가정을 문제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조금 바뀌었는데, 말하자면 ‘공백 포지셔닝’이다. 지금 팀이 놓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근데 리텐션이 가장 중요한거 아니에요? 디자인에 너무 신경 안쓰는 것 아닐까요? 조금 세게 말하면, 상대의 능력 배분상태 때문에 거의 ‘죽었다 깨나도’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을 선점해 공백을 일관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씽킹 파트너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 전략은 특히 시니어분들과 함께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 그들이 이미 전문성을 가진 분야에서 귀여운 수준의 관점이나 실력으로 기여하고자 하면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더 미숙한 사람의 역량을 쳐주겠는가.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편견과 경험이 없는 ‘공백상태’라는 것이 오히려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는 지점들이 너무 많다. 비즈니스, 트렌드, 프로덕트, 개발, 디자인, 사회혁신, 로컬 등 새로운 관점 자체가 밸류인 분야가 많다. 시니어의 경험과 주니어의 ‘뭔가 부족해보이지만 새로운 관점’을 합해 미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변화가 매우 빠른 IT시장, 테크, 디자인 등의 트렌드를 하나 잡고 파고들어 잘 알고 있으면,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특히 해외 사례를 덕질해서 잘 알고 있으면 매우 빠르게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생전 처음 듣는 저자, 책, 미디어, 사례, 비즈니스모델을 줄줄 읊는 주니어라니, 그냥 무시하고 윽박지를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안티 포지셔닝‘이나 ’공백 포지셔닝‘이 편하려면 자신의 기존 사회적 스크립트나 관계전략과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매스를 따라가는 걸 좋아하거나 모범생 정체성이거나 분위기 메이커이거나, 자신의 가치를 만드는 전략을 기존 정체성 전략과 일관적으로 맞아떨어지도록 재배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반골기질이 있고 반쯤 정신이 나간 주니어라면, ’공백 포지셔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1인 몫을 하고 있고, 일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공백을 선점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진 분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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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1일 오전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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