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부지기수의 브랜드가 쏟아진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에도 살아남거나 대중의 기억에 각인되는 브랜드는 소수뿐. 이런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최근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을 출간한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에게 브랜드 생존 방식을 물었다.
1️⃣브랜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존재의 시작이다. 쉽게 말하면 이름 붙이기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하는 노자의 도덕경도,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도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아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시작이다. 좋은 뜻을 담아 그렇게 자라 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이름 안에 담겨 있다. 브랜드도 그렇다. 회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자, 비전과 가치인 것이다.
화초와 잡초를 구분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잡초는 학술적으로 구분은 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진 고유 이름이 없다.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화초가 되거나 잡초가 된다. 이름과 브랜드가 중요한 이유다.
2️⃣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브랜드는 대부분 허명(虛名)이거나 아무 의미 없는 단어 조합이다. 여기에 상징적 의미가 붙으면 실명(實名)이 된다. 무의미한 합성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브랜딩인 거다.
브랜드는 본질의 가치를 뒤바꾸기도 한다. 순금 한 돈(3.75g)의 시세는 30만원쯤 된다. 같은 무게의 순은은 금값의 1.2%가량인 3500원 정도다. 그런데 티파니 매장에서는 금보다 비싼 은값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왜? 티파니이기 때문이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기능에 상징적 의미를 더할 때 비로소 브랜드의 가치가 생긴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3️⃣무엇을 위한 브랜드인가?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눈 덮인 험준한 산봉우리가 연상되고, 사막을 생각하면 이글거리는 태양, 모래언덕과 낙타가 연상된다. 가보지 않아도 영화 장면이나 잡지 사진, 독서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도 대중의 머릿속에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거다. 초코파이 하면 ‘정(情)’이 함께 떠오르는 것처럼. 이런 게 고착개념이다. 브랜드를 고민하지 않고 자동으로 구매하는 상태를 말한다. 커피라고 하면 스타벅스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고착개념화로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생기면 조금 불편하고 비싸도 그 브랜드를 소비하게 된다.
4️⃣그런데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라니, 고착되어야 성공한 브랜드 아닌가?
🅰️1964년 블루리본 스포츠란 이름으로 시작한 나이키는 1971년에서야 지금의 회사명으로 바꾸고 ‘스우시’ 로고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당시 미국에 불었던 조깅 열풍은 스포츠 브랜드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이키에 앞서 세계 스포츠 시장을 선점해온 아디다스는 조깅 붐을 무시했는데, 이게 나이키에 시장을 내주는 빌미가 됐다, 나이키는 그 틈을 타고 조깅화로 호응을 얻으면서 반전을 끌어냈다.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라고 생각한 아디다스가 고착개념에 빠진 실수였다.
별생각 없이 ‘그렇구나!’ ‘이건 원래 이래’라고 받아들이면 은연중에 고착개념이 생긴다.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는 훌륭한 사고법 중 하나는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하는 거다.
5️⃣남다른 브랜드는 어떻게 만드나?
🅰️고착개념에서 벗어났다면, 이젠 ‘나만의’ 고착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에이스침대는 인간의 평균 수면 시간이 8시간, 즉 삶의 3분의 1을 침대와 보내는 것에 주목하고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3년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슬로건이다. 침대가 가구라는 고착개념에서 벗어난 뒤, 과학이라는 새로운 고착개념을 만들었다.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려고 반대되는 생각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반대 방향이 아닌,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야 한다.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브랜드를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애플의 슬로건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도 ‘컴퓨터는 빠르게 연산하는 기계’라는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려는 브랜드 전략에서 나온 거다. ‘죽은 환자식이 아닌 건강식이다’는 본죽의 사례도 좋은 예다. 일반 통념에서 벗어나 또 다른 고착개념을 만들어야 성공한 브랜드가 된다.
6️⃣변화와 일관성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나?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아야 한다. 다른 말로는 지속성(continuity)이라고 할 수 있다.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본질은 유지하되 껍질을 바꾸면서 신선함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다.
에르메스를 보자. 수십 년간 색상과 디테일에 변화를 줘도 에르메스 백에는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체성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는 에르메스의 캠페인에도 브랜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90년이 넘은 포르쉐도 수없이 디자인을 바꿔가며 신차를 출시했지만, 동그란 헤드라이트에서 연상되는 ‘개구리’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있다.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는 포르셰 디자인 철학이 녹아 있어서다.
7️⃣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심리는 뭔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 니즈(needs) 시장이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이 원츠(wants) 시장이다. 원츠 시장은 수요와 가격에 제한이 없는 훨씬 큰 시장이다.
도쿄 긴자에 멜론 하나에 3만엔,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넘는 과일 가게가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고도 1833년 문을 연 이후 20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내가 먹을 과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싼’ 과일을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값진 선물을 주고 싶은 원츠 때문이다.
하지만 비싼 것만이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건 아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원츠 시장을 파고든 전략이 있다. 갖고는 싶지만 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물건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심리를 잘 이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