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은 마법 같다. 힘든 일을 하고도 “당신의 노고를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고, 당신의 희생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당신의 기여를 매우 가치있게 여긴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피로가 싹 가시고 뿌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한 일이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반대로 감사가 없는, 서로의 노고를 당연시 하거나 인정해주지 않고 각자 자기만 희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조직에서는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애써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따라서 애써 남 좋은 일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된다.
좋은 일을 했을 때에도 나만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열과 성의를 바칠수록 호구가 되는 기분이고, 결국은 나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서 최대한 단물만 빨아먹고 내가 희생하는 일은 줄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감사의 반대편에는 의욕상실과 불신, 이기심이 있다.
사회적 동물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똑똑해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 우선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기 힘들고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기회가 매우 적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크게 내세울 것도 없어도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권력이 ‘타인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정을 받고 나의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지는 것, 타인을 인플루언스(influence)할 수 있는지 여부가(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의 사회적 지위 또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감사하다고 여길 만한 쓸모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행동(봉사, 기부, 도움 행동, 영웅적 희생 행동)을 했을 때, 받은 사람보다 준 사람의 자존감이 더 상승하고 자신의 삶이 허무하지 않다는 삶의 의미감과 의욕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봉사 활동을 하고 와서 준 것보다 내가 받은 것이 더 많다고 밀하는 고백들이 나오는 이유다. 내가 한 일이 무의미하지 않고 가치있다는 뿌듯함은 자신감과 의욕의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일례로 뉴욕 대학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의 연구에 의하면 영업 콜센터에서 상사가 직원에게 “당신의 노고에 매우 감사한다. 당신의 노력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을 때 그 다음 날 실적이 50%까지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는 상호 신뢰와 협동, 관계 만족도를 높이는 반면 불신과 불만, 이기심을 줄이기도 한다. 다른 말로 ‘감사’는 관계와 조직, 사회의 결속을 담당한다. 사회적 동물에게 인간관계는 하늘같은 기쁨이 되는 동시에 잘못되면 지옥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로 시작하는 비극이 한 둘이 아님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도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많은 경우 그 증거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생각하는지, 내가 이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상대도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내가 희생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위해 희생하는지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관계들이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것도 있을 때 유지되며 이를 ‘관계의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감사’는 일단 적어도 내가 당신의 노고를 알고 인정한다는 표현이다. 당신의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보답하려는 의사가 있다는 시그널이다.
따라서 상대방으로부터 감사를 받을 때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호구이거나 상대방이 자신의 노력에 무임승차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관계가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상호성’에 대한 인식이 생길 때 그 관계는 신뢰할만한 관계가 되고 노력할만한 관계가 된다. 그 결과 서로 감사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연구에 의하면 감사를 ‘받은’ 사람들은 희생적인 일을 하고도 감사를 표하는 사람을 향해 억울함보다는 연대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낀(감사의 말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고마운 이를 향해 더 큰 호감을 느끼고, 호감을 느낀 만큼 관계를 위한 노력과 책임감, 관계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 또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를 통해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도 기쁘고 계속해서 함께 노력하는 ‘Win-Win’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감사의 중요성과 이로움을 과소평가한다.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을 어색하고 쑥쓰럽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자 니콜라스 이플리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통념과는 다르게, 감사를 받는 사람들은 주는 사람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뻐했으며 어색함 또한 잘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친절과 노고를 알고 있으며, 나도 언젠가 당신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라는 마음에 기분 나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픈 관계가 있다면 작은 감사의 표시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