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 때 추천해요 : "잘 에디팅 된 철학책 한 권이 필요할 때"
01. 도서 분야 중 '철학서'는 늘 적당한 인기가 있는 영역이었지만, 요즘처럼 핫한 때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서점 매대에 가보면 쉽게 풀어 철학책부터 시작해 고대의 철학자들을 재해석 한 책, 철학자들의 생활 습관을 고찰한 책, 상황에 적합한 철학 격언들을 모아놓은 책, 심지어 서른에 읽어야 하는 철학책, 마흔에 읽어야 하는 철학책까지 소개되어 있으니 말이죠.
02. 저도 이런 책들을 대부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왠만하면 주기적으로 히트하는(?) 철학책들을 찾아 어슬렁거리기도 하죠.
그러던 중 최근에 ⟪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여기엔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주제와 제목이 주는 끌림이 왠지 다른 철학책들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요즘 '~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시리즈가 넘쳐나다 보니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습니다.)
03.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책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예술과 미학에 깊은 조예가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던져주고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라파엘로라는 거장의 시선을 따라 그의 작품인 '아테네 학당'을 해석하는 과정이 참 맛깔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아 이 사람이? 아 이런 이야기가?'라는 의외의 반가움을 느끼기에도 더없이 좋습니다.
04. 더 큰 깊이는 예술을 타고 내려가 과학과 종교, 그리고 마침내 철학에까지 다다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마치 그 시대를 살던 이 사람들에게 있어 '지적 호기심'이란 무엇이었으며, '예술적 영감'이란 또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과학은 지금의 과학과 비교해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졌던 것이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철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려 했을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책이기도 하거든요.
05.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음악가들이 사랑한 철학자도 있을 테고 건축가가 사랑한 철학자도 있을 것이며, 디자이너가 사랑한 철학자도 있을 테니까요. 각 직업에서 바라본 철학은 어떤 모양이고 특정 인물이 주목한 철학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계속 그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06. 그러고 보면 결국 철학의 이야기도 에디팅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생 들어본 이름인데도 작은 관심도 두지 않고 살던 그 철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 속으로, 또 내 맘속으로 들어오는 날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긴 철학을 이야기해 주는 방식만큼이나 짧고 굵게 주목할 수 있는 철학의 한 토막을 내어주는 시도들도 다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07. 그런 의미에서 예술사도 공부하고, 철학도 한웅큼 집어먹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을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 책이 얇습니다. 후딱 읽을 수 있다는 것만큼 또 현대인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