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를 위한 책 - vol.32 ] ⟪중독의 역사⟫
📌 이럴 때 추천해요 : "오늘은 유튜브랑 인스타 보지 말아야지라는 의지가 매번 수포로 돌아갈 때" 01 .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하신 도박 중독 치료 권위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신영철 교수님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통 도박에 빠진 사람이라고 하면 마치 인생의 패배자이거나 자기 관리에 완전히 실패한 사람을 연상한다. 하지만 내가 다룬 환자 중에는 평생토록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한 회장도 있었다. 그는 이른바 도파민 중독이었다. 즉, 은퇴한 이후의 허무함이 그를 도박으로 이끈 게 아니라 평생토록 일을 도박처럼 해온 것이다." 02 . 평소에 '중독'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제가 이 인터뷰를 보고 나서는 좀 섬뜩해지더라고요. 중독이라는 것 자체가 환경의 문제, 의지의 문제, 윤리의 문제와도 결합되어 있겠지만 '관점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던 키워드에 호기심이 생긴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 않았고 말이죠. 03 . 그러던 중 바로 이 책, ⟪중독의 역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읽은 첫 인문학 서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소장 가치 또한 높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한 챕터의 호흡이 매우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04 .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이 책의 저자이자 정신과 교수이기도 한 '칼 에릭 피셔' 본인이 바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 속에는 타인에 대한 관찰과 더불어 본인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더불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서 출발해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아우르고, 다시 인류의 역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중독'이라는 테마를 파헤치는 여정이 저는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05 . 또한 이 책에서는 중독을 일종의 스펙트럼 위에 있는 개념으로 소개하며, 중독이라는 단어 자체가 질병이자 관념, 의지, 철학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워딩이라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중독에 관련한 갖가지 변곡점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중독이라 할 것인지'에 대한 함의이자 합의의 과제를 던지고 있죠. 유퀴즈 한편에서 출발한 작은 호기심이 제 머릿속에 있던 중독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만들고 만 겁니다. 06 . 누군가는 오늘날을 도파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무엇인가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것이 발단과 결말의 흐름이 아니라 '그래서 나를 더 자극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된 시대라는 얘기죠. 한편에서는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감금(?)해두는 금고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물리적으로 자극에서 벗어난 삶을 위해 자연 깊숙dl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의 체질 개선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입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 하면 숙면을 방해한다'는 뉴스를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통해서 보고 있는 우리니까 말이죠. 07 . 새삼스럽지만 저는 이런 책을 써주는 저자들이 참 고맙습니다. 기획부터 조사까지, 설계부터 전달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키워드를 물고 늘어진다는 그 사실이 참 존경스럽거든요.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언정) 나름의 결론을 내주는 저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환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셔 교수가 내린 중독에 관한 결론이 저는 일견 동의가 되더라고요. 08 . "중독은 몹시 평범하다. 삶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이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 운명의 한 가지 표현일 뿐이다. 중독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그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중독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중독과 함께 지낼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렬하게. 그러나 전쟁을 치르듯이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본성에 맞서 싸우는 전쟁은 부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09 . 이 부분만 읽고서 '뭐야 허무한데?'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책의 3분의 2지점쯤에 스치듯 나오는 이 부분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어느 정도의 임팩트로 다가올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늘 말씀드리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저희가 또 언제 '중독'이란 단어를 딥 다이브 해보겠습니까. 물때가 맞았다는 생각으로 가끔은 중독이란 워딩을 도구 삼아 노 한 번 저어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