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잘 팔린다. 설득에 관한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사
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잘 팔린다. 설득에 관한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자신의 목적대로 움직여야 하는 설득이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에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 3가지 방법으로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를 꼽았다. 그는 사람을 설득할 때 이 3가지의 중요성 비중이 에토스 60, 파토스 30, 로고스 10이라고 말했다. 로고스란 논리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논리란 사물의 이치나 법칙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설득력이 곧 논리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전달될 리 없기 때문이다. TV에서 볼 수 있는 정치토론을 살펴보면 토론자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자신의 주장에는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주장에선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논리를 갖고 있어도 양자 간의 주장이 합의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토론에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이유다. 토론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선 로고스만으론 부족하다. 다른 무기가 더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파토스다. 대중은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이 그 주장에 대한 열정이 부족할 때 그에게 공감하지 않는다. 메시지에 로고스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과 열정이 없다면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파토스는 페이소스라고도 하는데 페이소스란 열정이나 고통, 동정, 연민, 감정, 비애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관객들이 작품 속의 주인공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바로 페이소스다. 하지만 화자의 메시지에 논리와 열정이 있더라도, 화자의 품성과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에토스다. 에토스는 윤리(ethics)를 뜻한다. 즉, 화자가 윤리적 적격성과 동떨어진 사람이라면 신뢰하지 않는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기란 힘든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설득의 방법으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논했지만,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생각은 달랐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수사학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신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빌려와 를 저술했다. 플라톤은 가공의 인물 파이드로스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수사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적한다. 수사학을 통한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나쁜 길로 홀리는 것이므로 리더가 수사학에 의지 해서는 안 되며,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진실의 길로 안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가장 잘 이용했던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명연설가였다. 비참한 현실의 늪에 빠져있던 독일 대중은 그의 연설을 듣고 싶어했고 그에게 광기에 가까운 충성심을 보였다. 히틀러는 파토스를 매우 잘 이용했다. 나치의 선동장관이었던 괴벨스를 이용해 대중을 세뇌했다. 파토스를 신봉한 괴벨스는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됐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실의의 늪과 경제적 고통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논리란 중요치 않았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그랬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에 승리해 미국을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루즈벨트는 ‘지성은 2류, 감성은 1류’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에토스를 능가할 정도로 파토스의 힘은 매우 강했다. 인간은 입증된 사실보다 믿고 싶어하는 사실에 더 끌린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가 파토스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파이드로스는 교묘한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을 멋있다고 동경하며 수사학이 중요하다고 반론을 펼쳤지만,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엔 진실에 이르는 길이 없으므로 수사학에 의지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피터 드러커의 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누군가 피터 드러커를 찾아가서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습득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 물었다. 이때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답한다. “리더십은 카리스마가 아니다. 리더십은 카리스마와는 관계가 없다. 리더십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게 아니며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리더십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리더십인가 하는 점이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보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준 틀린 지도자였다. 반면 조지마셜, 해리트루먼 같은 이들은 뛰어난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적인 요소는 갖고 있지 않았다.“ 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설득의 힘은 수사학에서 나오지 않는다. 설득이 수사학에만 집중되면 리더는 대중을 선동해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 히틀러와 같은 괴물이 될 뿐이다. 리더십의 토대는 계급과 특권이 아닌 휴머니즘에서 시작돼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조직에서의 자신의 소명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명확하고 뚜렷하게 설정해 조직원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십의 본질은 헌신(commitment)이다. 설득이 기만의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 설득은 진실한 대화를 통할 때 효과적인 소통의 수단이 된다. 소통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이기는 게임이다.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을 설득시키려고만 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과 공존할 수 없으며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