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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A로부터 고민이 담긴 메일을 하나 받았다. HR실무자인 A는 200명이 넘는 중견기업에 온 지 거의 5년인데도 아직 적응되지 않는 것이 회의시간이라고 했다. 그 회사의 경영자는 중요한 모든

얼마 전 A로부터 고민이 담긴 메일을 하나 받았다. HR실무자인 A는 200명이 넘는 중견기업에 온 지 거의 5년인데도 아직 적응되지 않는 것이 회의시간이라고 했다. 그 회사의 경영자는 중요한 모든 회의를 본인이 직접 주재한다고 한다. 거의 모든 회의의 시작과 끝이 경영자의 일방통행식 지시로 진행이 되다 보니 직원들이 점점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일종의 푸념을 필자에게 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흔하게 나타나는 회의 풍경의 한 단면이다. 실무자 위주로 회의를 해서 창의적인 방안을 도출하면 가장 좋겠지만, 팀 단위의 작은 회의 조차 경영자가 참여하는 경우는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결론은 비슷하다. 경영자의 지시로 일방통행식 회의가 진행이 되기 마련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회사를 일궈냈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A에서 Z까지 다 알고 있으니 회사와 관련한 일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영자의 완벽한 착각에 불과하다. 회사 초기에는 몇 명 안 되는 직원으로 성장해야 하다 보니 경영자는 사원에서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지고 조직이 복잡해지면 회사의 중용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나머지는 직원들의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성원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로 조직이 움직이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A의 편지를 읽으며 오래 전 어느 IT기업의 중간관리자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경영진 워크숍을 통해서 도출된 사업부별 KPI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업부별로 3~4명의 팀장들이 그룹을 이뤄 해당 사업부의 본부장과 함께 당해년도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도출하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다. 보통 이러한 중간관리자 연수에 대표가 직접 참석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개는 경영진 워크숍이나 또는 본부장들 대상의 고급관리자 워크숍에 참석해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조직의 경우, 지난번 고급관리자 워크숍 때도 그랬고 이번 중간관리자 워크숍 때도 대표가 빠지지 않고 직접 참석하는 의욕(?)을 보였다. 경영자의 열정적인 의욕에 깊은 감탄사를 보내긴 했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번 고급관리자 워크숍 때의 상황이 다시 연출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도출한 거의 대부분의 KPI가 사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아니라, 사업부별 실행전략 또한 대부분 대표의 의견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번 중간관리자 워크숍 때는 반드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실행전략을 도출하리라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중간관리자들 또한 그들의 본부장들이 그랬듯이 모두가 입을 닫은 채 대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24명 48개의 눈동자가 전부 세미나실 입구에 앉아 있는 대표를 향해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 조직을 처음 접했을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의 리더십과 일사분란한 조직력이 멋져보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분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직원들의 생각을 멈추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한 듯했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니라 단일대오를 갖추고 생각 없이 움직이는 로봇조직이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워크숍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말았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팀별 실행전략을 직접 지시하는 대표의 지나친 친절(?) 덕분에 모든 팀장들은 너무나 편안하고 부드럽게 액션플랜을 만들어냈다. 이런 종류의 워크숍은 뭔가 폼 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페이퍼 작업을 위한 의미 없는 워크숍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내버려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고 조용히 대표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다 아는 내용이라고 모든 걸 사장이 지시하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이 회사는 결국 ‘무뇌 조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생각하지 않는 무뇌조직이 될 것이다“는 표현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나의 다소 건방진 돌출발언에 충격을 받았는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결과가 형편없어도 좋으니 현장 의견이 반영된 실행전략이 나오도록 최대한 많은 말을 하게끔 만들어달라“고 하며 대표는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전략을 수립한다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름 활발한 의견이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팀별 실행전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세련되지 못한 KPI가 많이 보였지만 내용을 다듬었고, 대표와 보고를 겸한 면담을 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던 대표는 보고서를 옆으로 밀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무뇌조직이라는 말에 둔기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실적 저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조금은 알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살아 움직이는 조직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건 이후로 회사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실적도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이라는 책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괴물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창의적 사고는 나오지 않는다.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로, ‘무뇌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인류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방통행의 리더들이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 ‘무뇌조직’으로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명한 리더는 직원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실행하게끔 한발짝 뒤로 물러나 조직을 운영한다. 반면에 일방통행의 리더는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는 무뇌조직을 탄생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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