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봄과 함께 새로운 기대가 움트는 계절이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도 있겠다, 새로운 반이 되어서, 부서 이동을 하게 되어서,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
3월이다. 봄과 함께 새로운 기대가 움트는 계절이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도 있겠다, 새로운 반이 되어서, 부서 이동을 하게 되어서,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우선 ’나‘를 소개하는 통과의례가 있기 마련이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는가? 한 장의 이력서처럼 지나온 나의 프로필을 주루룩 열거 하는 방법도 있고, 요즘 유행한다는 MBTI를 활용해 나의 특징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겠다. 나의 ’장점‘을 어필하는 방식은 어떨까? 오늘 소개하려는 그림책은 바로 그 ’나의 장점‘에 대한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작가, 일본인 작가의 그림책 제목이 동일하다. “내가 잘 하는 건 뭘까?!”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간 살아오며 정립된 데이터로 촤르르 한 장의 보고서가 명쾌하게 작성되는가? 아니면 긁적긁적 ‘글쎄요…’라며 말꼬리를 얼버무릴 수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속을 꽤나 시끄럽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잘한다’는 건 내가 어떤 점에서는 남보다 낫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잘한다는 건 ‘비교’를 전제로 하는 질문인 것이다. 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모두 그래도 내가 남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점이 무얼까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의 유진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은 바로 이런 우리의 고정 관념에 대해 다른 해석을 펼친다. 주인공 이름도 ‘홀수’이다. 이름부터 뭔가 좀 아쉬워보이는 이 친구가 고심하는 숙제는 바로 ‘자기가 잘 하는 것‘이다. 홀수는 이런 숙제가 제일 싫다. 자기가 잘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적어낼까? 하지만 그랬다가 친구들이 못하는 걸 알고 놀리면 어쩌지? 자기가 잘 하는 건 딱히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또 대충 눙치며 넘어가는 성격도 아니다. 고민을 하던 홀수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제가 잘하는 게 뭐 같아요?’ ‘너 기타 치잖아, 얼마 전에 발표회도 했다며.’ 아빠가 눈을 끔뻑끔뻑하다 답하는 걸 보니 아빠도 딱히 홀수가 잘하는 게 떠오르지는 않나보다. 이른바 ‘평범한 내 아이’ 뭘 잘한다고 해야 하지? 그래서 기타를 들먹인다. 그런데 그 기타란 말이 홀수의 고개를 더 숙이게 만든다. 연주회까지 했어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코드가 기억이 안 나면 치는 척만 해도 돼‘라던 기타 선생님께 물어보니 ’그 정도면 기타를 잘하는 편‘이라는 답변 대신 ’너 태권도 잘 하지 않느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근데 그 태권도도 사실 홀수는 상대방의 발차기에 나가 떨어졌다. 위로하는 친구에게 홀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배운다고 다 잘하는 건 아냐.’…홀수가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홀수는 자신에게 참 솔직한 친구일 수도 있다. 과연 이 친구는 ‘잘하는 것’의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동생이 와서 그림을 그려 달란다. 형은 그림을 잘 그린다며. 잘 그린다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려주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팩트 폭행’은 놓지 않는다. ‘형이 잘 그리는 건 아냐’라고. 또래에 비해 잘 그리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했지만, 동그라미 머리에 짝대기로 팔다리를 그린 동생의 낙서 수준에 비하면 작품이다. 홀수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이 잘한다는 걸. 홀수는 누군가와 비교하면 기타도, 태권도도 잘하는 아이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기타든 태권도든 잘한다는 기준 자체가 애초에 넌센스일 수 있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아니 그 금메달조차 그 날의 상황과 개인의 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삶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살아가기에 ‘누구보다 더’라는 기준으로 잘하는 것을 측정한다. 홀수는 깨달았다. 지금은 기타도, 태권도도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동생과 같던 과거의 홀수보다는 ‘일취월장했다’는 점을.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것이라는 걸. 홀수의 깨달음이 ’경쟁‘의 무한루프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죽비‘ 소리처럼 따갑고 신선하다. 일본의 구스노키 시게노리가 글을 쓰고, 이시이 기요타카가 그림을 그린 는 또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인공 다가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잘하는 걸 발표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런데 다가오도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은 거다. 고민을 하던 다가오는 선생님께 자신의 고민을 토로한다. 엄마는 식구 중에 가장 일찍 일어나고, 슈토는 여러가지 꽃 이름을 알고 있는 식물 박사고...“엄마랑 친구들이 잘하는 건 다 찾았는데 정작 제가 잘하는 건 못 찾았어요.” 다가오는 정말 잘하는 게 없을까? 한 40대 여성이 자기는 그간 살아오며 ‘성실’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흔이 되도록 한결같이 성실한 자기 자신을 보며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의 장점이 ‘성실함’이라는 것을. 마치 그 ‘성실’처럼 다가오의 선생님은 말했다. 다른 이들의 장점을 ‘눈 밝게’ 찾아낼 수 있는 바로 그 점이 다가오의 장점이라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새로운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빨리 성과를 내고 우월해져야 한다는 내 무의식의 경쟁 심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이 계절에 우선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