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는 순간 조직을 개편하고, 목표를 수정하고, 업무 영역을 확장한다. 조직은 ‘엔진 가동률 100%’로 돌진하게 된다. 리더는 ‘나 좋자고 이러는 건 아니잖아.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부
리더가 되는 순간 조직을 개편하고, 목표를 수정하고, 업무 영역을 확장한다. 조직은 ‘엔진 가동률 100%’로 돌진하게 된다. 리더는 ‘나 좋자고 이러는 건 아니잖아.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부서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니까’생각한다. 이는 미안하게도 리더만의 생각이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지 않다. 의욕, 당연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의욕을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순간 이에 따르는 부작용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리더가 되는 것, 개인에게 다시 없을 기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과를 내서 능력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더구나 타 부서로 수평 이동해서 비슷한 크기의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는 것과 달리, 승진을 해서 더 많은 부서원과 권한이 주어지는 순간 ‘의욕 100%’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래 전,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성적은 물론이고 반 전체 성적 또한 수치화하고 서열을 매겼다. 그것이 담임 선생님에게 어떤 명예 혹은 인센티브로 작용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담임 선생님은 시험마다 이를 꽤 중요시 여겼던 기억이 있다. 반 전체 평균보다 점수가 낮은 학생을 꾸짖고 심지어 ‘사랑의 매를 하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반 학생들 중에 반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한 친구가 몇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회사도 똑같다. 부서원들도 부서 전체 매출과 성과에 당연히 신경을 쓰겠지만, 그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업무 성적이다. 일단 나부터 성과를 내야 다음으로 고개를 들어 동료나 부서 전체를 보는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리더는 다르다. 부서원의 성과가 모이고 쌓여 하나로 수치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부서원들을 이른바 ‘죈다’. 위에서부터 압박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문제 중 하나는 리더의 목표가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부서의 매출이 20억 원이고 매년 10% 정도 성장한다면 정상적인 매출 목표는 22억 원이지만, 그럼에도 회사는 성장률보다 훨씬 높게 목표를 잡는 관례로 약 25억~30억 원으로 매출 목표를 설정한다. 누구나 다 안다. ‘목표는 목표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새로 부임한 리더는 이 관례를 무시한다. 그는 두 어깨에 의욕을 잔뜩 짊어진 채 부서 목표를 40억 원으로 정하고 부서원을 닦달한다. 더구나 이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그는 완만한 상승 곡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급격하게 상승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부임하자마자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1970년대의 유물인 ‘하면 된다’ 정신으로 몰아치면 자연히 부작용은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그저 큰소리 지르고 앞에서 깃발을 휘두르며 ‘전진’을 외치면서 부서를 운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지극히 ‘무식하고 용감한 상사’라는 별칭을 얻는 지름길이다. 리더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현실을 파악하는 인지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부서원의 능력을 파악하고, 부서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100% 합의는 아니어도 ‘부서원 전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다수의 부서원 마음을 얻어야 한다. 또 이러한 ‘자기 인지’를 통해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사실 이 과정이야말로 ‘개혁’이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전진하고 진화하고 부서원 모두에게 공통의 이익과 선이 골고루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개혁이다. 사람을 자주 내보내고, 밤낮없이 일만 하고, 아무도 바라지 않는 이상적이고 도덕적이면서 돈도 벌어들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개혁은 아니다. 리더들은 가끔 혼돈한다. 개혁을 통한 조직 혁신, 개혁을 통한 인적 구조 조정, 개혁을 통한 가장 모범적이고 효율적인 부서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옳은 것이라고. 그러나 부서의 변신에는 순서가 있다. 부서원의 합의와 인정이 가능한 선에서 조직을 개편하고,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하며, 일의 경중에 따른 순서를 정하고, 마침내 공정하고 능동적이면서도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우리는 역사에서 개혁의 기치를 내세웠지만 역풍에 휘말려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을 수없이 봐 왔다. 조선 개국의 설계도를 완성한 정도전도 그랬고, 여기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추가된다. 바로 조광조다. 그는 조선 중종 시대의 정치가이자 성리학자다. 33세에 중종의 신임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조선의 완전한 개조, 즉 새로운 조선 건설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위해 성리학의 최고 실천가인 ‘철인哲人’이 되어야 한다고 중종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간언했다. 하지만 개혁은 4년 만에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그는 사약을 받았고 그를 따랐던 젊은 유생과 관리들은 모조리 죽거나 귀양을 떠나야 했다. 조선 건국 후 100여 년 만에 등장한 조광조. 하지만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며 그가 꿈꾸던 조선의 기틀이 변질되었듯 조광조 역시 보수파의 반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를 발탁하고 힘을 실어 주었던 중종 역시 마지막에 조광조를 외면했다. 이는 조광조의 ‘급진 개혁’이 기득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조광조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중종조차 쉼표 없는 개혁에 극심한 피로도를 느꼈기 때문이다. 불 같은 열정과 냉철한 이성, 완벽한 수신, 고금을 꿰뚫는 이론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조광조. 과연 무엇이 조광조의 조선 개혁의 원대한 꿈을 무너뜨렸을까? 또 어째서 자신의 열성적 지지자던 중종의 신임을 하루아침에 상실한 것일까? 실패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조광조의 원칙주의, 타협과 배려 없이 단 하나의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했다. 조광조는 사림을 제외한 조선의 모든 당파를 적으로 돌렸다.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중종마저도 조광조를 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최대의 패착이다. 퇴계는 “뜻은 높으나 정세 파악 없이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한 점과 정치적 타협이 없었던 점이 아쉽다”라고 평가했고, 율곡은 “자질과 능력이 뛰어났지만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 일선에 뛰어든 것이 아쉽다”라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