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제는 하루 종일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에도 눈이 억수같이 많이 오는 날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유독 눈이 자주 내리는 것 같아서 과거를 떠올려 보고 싶은데, 예전엔 얼마나 자주 눈이 내렸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눈이나 비 또는 무엇이든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지는 것을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우산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나 눈이 내리면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제한이 생깁니다. 왠지 밖에 덜 돌아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운동하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나 눈은 상당히 방해가 되는 녀석입니다. 눈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곡식과 과실의 풍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눈이나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하늘에서 무언가 내리는 녀석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는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그게 무엇이든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자동차 도로에는 눈이 쌓이지 않습니다. 특히 서울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동차 도로에 눈이 쌓인 모습을 본 기억이 2000년대 이후로 보지 못했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에 열선이 깔리고, 자동차가 늘어나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도로에 눈이 쌓이지 않습니다. 덕분에 운전자로 눈 오는 날에 자동차를 몰고 다녀도 길이 미끄럽지 않을까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감사한 마음 한 편에 그만큼 차가 많아지니 불편함도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완전히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없습니다. 보이는 좋은 점의 뒷면에는 반드시 아쉬운 점이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같은 사물과 상황을 보더라도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아님 소수의 특정인을 위해 좋은 점을 더 뾰족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걷다 보면 어떤 구간은 눈이 왔는지 모르게 깨끗하게 치워져있고, 다른 구간은 눈이 내린 양을 측정할 수 있는 만큼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본인이 소속된 건물 앞에 내린 눈을 열심히 치운 곳은 길 위가 깨끗하고, 사람도 잘 지나다니지 않고 한적한 곳은 눈이 내리는 대로 쌓여있습니다. 간혹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남습니다. 사람만 지나간 것은 아니고 새, 고양이와 같은 친구들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누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길을 지나갔는지 궁금해집니다. 일 때문에 자주 읽는 남의 이력서도 삶의 발자국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몇 장으로 표현된 삶의 발자국을 읽노라면 사람의 향기가 잘 느껴지진 않습니다. 마치 일을 하는 기계가 남긴 흔적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참 사람 냄새나는 이력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직하게 소개하는 내용보다 얼마나 훌륭한 기능을 가진 일꾼인지 자랑하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이력서를 잘 읽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이 있습니다. 반면 내가 읽는 건지 아님 눈으로 글씨를 따라가기만 하는 건지 헛갈리게 만드는 책도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나 지식이 담긴 내용이라도 읽기 어려운 책은 절대 도전하지 않습니다.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하고 싶은데, 읽기 어려운 책을 대할 때면 책이라는 친구를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물과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내용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해석된 내용이 대단하지 않더라도 다른 관점이 존재함을 느끼는 것이 흥미롭고, 그를 통해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눈이 내려 미끄러워 보이는 길을 엉금엉금 걷노라면 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 평소보다 느린 속도가 조바심을 내게 만듭니다. 그런데 느리게 걸으나 빠르게 걸으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아등바등했던 것인지 도착 시간을 바라보며 머쓱해집니다. 서두르지 않고 안전하게 한 걸음씩 천천히 생각하고 고민하며 걸어도 충분히 원하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급할 때마다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눈 길 위를 걷고 있으니 차라리 안전하게 조심히 천천히 가보자고, 그래도 늦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입니다. 제설 작업을 하는 자동차가 지나간 길 위에 굵은소금이 뿌려져 있습니다. 소금이 어찌나 촘촘히 깔려 있는지 마치 하얀 카펫처럼 보입니다. 누군가 우릴 위해 수고해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비록 눈으로 볼 수 없는 응원이나 도움이지만, 우리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칭찬하고 뿌듯하게 여겨봐도 좋겠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에게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쁘다고 그냥 지나갔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숨겨진 의미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지나가던 길을 멈추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보석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