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ere to everywhere
어제 인천에서 열린 지인의 기타 독주회를 보고 왔습니다. 주말에 아이들 양육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 선뜻 아이를 봐주겠다는 또 다른 지인 덕분에 공연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음악 공연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제 인생에서 흔하지 않은 기회였습니다. 솔직히 지인이 하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의 저라면 음악 감상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았을 테니까요. 마음을 열고 기타 소리를 들으며 상상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음악 감상의 전부였습니다. 시간과 작은 에너지만 있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평소 분주하게 살다 보니 음악 감상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각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일 같은 생산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삶이 풍족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시간에 쫓겨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가는 것이 마음 편할 뿐이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상상한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물었습니다. "차 안에서 음악을 안 듣는 이유가 있어?" 보통 많은 분들이 차 안에서 음악을 듣잖아요. 저는 그냥 음악을 틀어놓고 다니지 않습니다. 꼭 들어야 하는 목적이 있는 음악만 듣습니다. 그저 빠르게 운전해서 목적지에 가는 것이 중요할 뿐, 차 안에서 하고 싶은 다른 일은 없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입니다. 핑계를 대자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성향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못해서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이 어렵습니다.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음악을 듣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집중해서 처리하기 위해 여유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바쁘게 휘몰아쳐야 약속한 일들을 모두 해낼 수 있기에, 잠시라도 여유를 가질 틈이 없습니다. 'From here to everywhere'. 제목은 '여기서 시작하여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여기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과 생각으로 말미암아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곳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민들레 씨가 바람에 날아가 먼 곳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우듯이요.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매 순간 우리가 하는 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공백과 사색이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공간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될지 상상하는 시간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 더 의미 있어질 것 같습니다. 혼자만 잘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나라와 세계, 그리고 우주까지 영향을 미칠 우리의 작은 행동을 살피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아니,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나요?" 압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 어제 공연에서 연주자는 배경 화면으로 생동감 넘치는 자연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산과 들, 바다와 섬, 노을과 바람. 기타 연주와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져 저절로 음악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너무 평안해서 잠시 단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상상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잠을 자는 모든 행위가 감상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각자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상상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모두 연결된 하나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중심이고, 우리는 그 안에 사는 작은 존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나누며 사는 것이 이 세상 속 존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