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취업시장의 이유1. [경험부족]
1.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논할 때, 사람들은 늘 같은 말을 꺼낸다. 경기 침체, 채용 축소, 구조조정.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지점을 보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구직 시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와 실제로 작동하는 메커니즘 사이에 묘한 간극이 있다는 걸 느꼈다. 기업들은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경험 부족'이라는 기준이 점점 더 강력한 배제 장치로 굳어지고 있었다. 2. 문제는 단순했다. 커리어 초반에 어느 직무를 선택했는지가 이후의 5~6년을 결정하는 구조가 강화되면서, 우연한 선택 하나가 지나치게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직무 경계가 흐려지던 시기를 기억한다. 그때는 대체 가능성과 확장성을 이유로 다양한 경험을 권장했다. 콘텐츠도 해보고, 퍼포먼스 마케팅도 해보고, 기획도 해보라고 했다. 그게 경쟁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시장에서는 그 다양한 경험이 오히려 '애매한 경력'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채용 공고에는 "퍼포먼스 마케팅 3년 이상 필수"라고 적혀 있고, "콘텐츠 마케팅 2년, 브랜드 전략 1년"이라는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걸러진다. 3. 기업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확실한 경력을 가진 지원자를 찾는다. 그 결과 초반 경력이 매끄럽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경쟁에서 밀려난다. 문제는 기업의 이런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구도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채용 담당자도, 팀장도, 대표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합리성이 시장 전체를 점점 더 좁아지게 만든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질수록 기업은 검증된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검증된 인재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이 바로 '경험'이다. 하지만 이때 말하는 경험은 실제 업무의 태도나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라, 이력서에 적힌 경력 라인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였다. 4. 실제로는 성실하고 잘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협업 태도가 좋고,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포트폴리오나 짧은 인터뷰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경험 부족은 능력 부족이 아닌데도 마치 동일한 의미로 취급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서 '경험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는 공식이 굳어지고, 시장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한다. 직무 전환을 시도한 사람들은 더 곤란해진다. 다시 원래 직무로 돌아오기도 어렵고, 새로운 직무에서도 '핵심 경험 부족'이라는 이유로 반복해서 문턱에서 걸린다. 결국 커리어 초반의 작은 어긋남이 시간이 갈수록 회복 불가능한 오류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5. 이런 현상을 두고 개인의 전략 부족이라고만 말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누구도 커리어의 정답을 알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경험을 검증하는 방식' 자체에 있다고 본다. 업무 태도, 협업 스타일, 문제 해결 능력처럼 실제 성과를 좌우하는 요소들이 기록되거나 검증되지 않는 이상, 기업은 계속 이력서상의 경험 연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레퍼런스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과정 역시 악용될 가능성이 커서 구현하기 어렵다. 6. 그렇다 보니 시장은 계속 경험만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이 기준이 또 다른 경험 부족자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결국 이 취업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건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경험만을 유효한 경험으로 인정하는 구조'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풀어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시장은 더 냉정해지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은 더 쉽게 배제될 것이다. 나는 그 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력서에 적힌 경력의 순서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