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양심
애플 워치 날씨 정보에 속아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출근 전 확인했던 애플워치 속 날씨 정보는 영상 기온이었는데, 막상 밖에 나와보니 칼바람이 매서웠습니다. 이런 날은 왠지 기다리는 타이밍에 버스가 유독 잘 안 도착하는 느낌입니다.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찔러넣고 목을 점퍼 깊숙이 파묻고 있던 순간, 버스 정류장 한쪽에서 한 아주머니의 잔잔하지만 빡친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습니다. 버스 정류장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바라보며 궁시렁거리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바닥의 쓰레기도,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도 처음은 아니기에 또 한 명, 또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으로 여겼습니다. 기다리던 버스에 집중하던 순간, 우연히 그 아주머니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외국에서는 이게 말이 돼?!” (쯧쯧) 외국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더욱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을 찬양하는 어른들은 대한민국에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제 볼거리도 아닙니다. 제 정신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에, 이상한 일이 하도 많아서 별스럽지 않게 느끼며 사는 것이 보통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다음 행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넓은 종이로 보이는 무언가를 붙잡고 바닥을 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해 부끄러움을 크게 느끼기 전에 자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의 원인은 아주머니의 용기였습니다. 쓰레기로 더러워진 버스 정류장을 직접 깨끗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아주머니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분명 나도 쓰레기를 보고 더럽다고 느꼈는데, 분명 나도 아주머니 못지않게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분명 나도 선진국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나는 행동하지 못했고 아주머니는 용기 있게 바닥을 정리했던 걸까 궁금했습니다. 답은 뻔합니다. 저는 바닥이 더러운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행동에 옮기지 않은 이유는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버스 정류장이 제 것은 아니기에, 길바닥도 제 것이 아니니까, 그냥 꼴 보기 싫은 순간만 넘기면 깨끗한 집과 사무실을 볼 수 있으니까, 남의 것은 어떻게 되든 참견하지 말자는 주의였습니다. 뭐, 사는 게 그렇지 하고 넘길 수도 있는 주제지만, 오늘따라 유독 아주머니 행동을 보고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제가 방구석 워리어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방구석에서는 깨끗해야 한다, 질서 유지를 해야 선진 시민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눈앞에 놓인 현실에서는 외면하고 철저히 무시하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심한 개인주의에 빠져 살고 있던 것입니다. 이런 제가 누구에게 도덕과 양심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자격이 없는, 버스 정류장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요? 오늘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부끄럽지만 오늘처럼 똑같이 모른 척하고 제 갈 길만 분주하게 다녔을 겁니다. 왜냐하면 쓰레기도, 길거리도 제 담당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과한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요? 아주머니와 쓰레기를 버린 사람만 욕해도 괜찮은 걸까요?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릇된 일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때야 할까요? 어렵습니다.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데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고민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