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속도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결심했습니다. 뛰는 듯한 빠른 걸음으로 회사 사무실까지 가보겠다고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천천히 걷기엔 날씨가 무척 추웠고, 지난번에 한 번 뛰어갔다가 너무 심한 칼로리 소비를 느꼈기에, 합리적으로 빠르게 걷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회사 사무실까지 약 1.5km, 지하철 한 정거장 반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 거리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겠지만, 걷기와 운동에 집착하는 저는 이 정도 거리는 당연히 걸어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낍니다. 물론 엄청 먼 거리는 아니지만, 문제는 약간 기울어진 언덕 코스라는 점입니다. 평지에서는 신나게 속도를 내지만, 어김없이 언덕을 만나면 속도가 감소합니다. 언덕을 빠르게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뛰는 것인데, 아침부터 뛰기엔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쉽지 않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귀신같이 평지에서나 언덕에서나 앞서가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분명 다리를 앞뒤로 내딛는 속도가 비슷해 보이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점점 차이가 납니다. 마치 착시현상처럼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귀신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다리 길이도 제가 더 길어 보이는데, 어떻게 추월당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작건대 발바닥이 지면을 밀어내는 힘이 강력해서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건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른 것처럼, 각자 걸으며 하는 행동도 가지각색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는 땅을 보며 걷고, 누구는 핸드폰을 봅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아침 식사를 합니다. 걸으며 무언가를 하는 분들은 당연히 평균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걸음이 느린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빠르게 걷고 싶지 않은 분들도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립니다. 보기엔 답답하지만 각자 사정이 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저를 보면 왜 저렇게 굳이 빨리 가려고 하는지 영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특히 외국인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무슨 비상사태가 벌어졌나 의심할지도 모르죠. 서로 빨리 가려고 밀치고, 인상을 찌푸리며, 기다릴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우리나라 문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듯이 우리나라도 이렇게 빨리 걸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커리어 여정의 속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취업한 사람, 빠르게 승진하는 사람, 그러다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사람 등 각자의 여정 속도는 천차만별입니다. 누가 빠르다고 부러워할 것도, 누가 느리다고 혀를 찰 것도 없습니다. 엎치락뒤치락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것이 커리어 여정의 속도니까요. 그러니 남들이 다 취업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만나게 될 동지들입니다. 지금 잠깐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큰 차이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건,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남들 눈치 보며 억지로 빨리 가려다 넘어지지도 말고, 남들이 느리다고 멈춰 서지도 마세요. 출근길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처럼, 각자의 보폭으로 각자의 리듬으로 걸으면 됩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자신만의 속도로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