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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합니다. 달리기 실력으론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용감하게 토끼에게 도전합니다. 그리곤 마침내 경주에서 승리합니다. 거북이는 토끼에게 질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자신이 느리다는 것은 알지만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오후에 주문하면 내일 오전 7시 전에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획기적이었으나 지금은 일상적인 내용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더욱 못하고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는 것도, 계란이 완전하게 익어가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지 못 하는 상황을 몹시 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영장에는 Fast lane과 Slow lane이 존재합니다. 단어 뜻 그대로 빠르게 수영할 사람과 느리게 천천히 수영할 사람을 배려한 구분입니다. 그러나 ‘빠르다’와 ‘느리다’ 기준은 정해주지 않아서 주관적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제법 빠른데 Slow lane에서 느린 사람을 만나면 답답하고, 어정쩡하게 빠른데 Fast lane에서 수영하면 뒤에서 빠르게 쫓아오는 추격자에게 쫓기게 됩니다. 저는 태생이 걸음이 느린 아이입니다. 걸음뿐만 아니라 평상시 행동이 느린 편입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엄청 급합니다. 빨리빨리 하지 못해 늘 안달이나 있습니다. 그래서 느린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납니다. 왜 저렇게 일상을 느긋하게 사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빠르게 속도를 내지 못 하는 사람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특정한 것만 어중간하게 빠르면서 느린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우습고 한심합니다. 문화 의식이 뛰어난 나라의 사람들은 자동차 운전을 할 때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상황에도 경정을 울리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 도로 위에서만큼 경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도 기다려 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헤매고 있으면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여 경적도 울리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느긋하게 기다리다면서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다니, 제게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논리입니다. 마음이 급한데 제 마음과 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 상황과 사람들을 보면 욕지기를 하고 분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 사정과 다른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급하지만 다른 사람은 느긋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천천히 걷고 싶고, 천천히 수영하고 싶고, 천천히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전부 제 땅이거나 공기, 도로가 아니니까 누가 제 앞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 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며 비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거북이처럼 경주 코스를 완주한다는 생각으로 느리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속도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할 때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빠른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때로는 속도 조절을 하며 놓치고 있는 것은 없었나 돌아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나온 여정을 회고하여 꼼꼼히 맛보는 재미도 누리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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