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x50mm 명함, 타인을 안전하게 축소하는 기술
명함은 예의의 외피를 두른 박제 도구다. 90x50mm의 작은 직사각형 안에 한 인간의 생애를 밀어 넣는다. 사회는 이 얄팍한 면적이면 타인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 규격으로 납작하게 줄여도 좋다는 사회적 허가를 주고받는다. 관찰의 생략, 텍스트로의 전락 본래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느리고 불확실하다. 그러나 사회는 이 비용을 견디지 못한다.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처리 가능한 정보로 분류하기를 원한다. 명함이 오가는 순간, 인간에 대한 응시는 텍스트 해독으로 전락한다. 입체적인 존재는 종이 위의 배열 뒤로 숨고, 이름보다 직함이 먼저 발언권을 얻는다. 정중한 폭력, 분류에서 오는 안도감 인간은 본래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그 복잡함을 감당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그만한 에너지를 지불할 의사가 없다. 분류의 효율성: 직함 몇 줄로 존중의 무게와 조심스러움의 정도를 즉각 계산한다. 취급설명서: 명함은 소개장이 아니라 상대를 어느 칸에 놓을지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우리가 예의라고 부르는 행위는 사실 타인을 존중하는 기술이 아니다. 타인을 안전하게 축소하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드는 기술에 가깝다. 설명이 길어지는 존재의 비용 이 체계에서 명함 없는 존재는 피로를 유발한다. 직함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람, 소속보다 서사가 필요한 사람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사회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회는 오직 분류되고 정리된 인간만을 선호한다. 명함은 존재의 증명이 아니라, 사회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접혀 있음'을 승인하는 형식이다. 전체의 글이 궁금하시다면, 브런치 https://brunch.co.kr/@d38121bf5235464/57 👇 지금 구독하고 사유의 날을 세우세요. maily.so/beyondjuri #권유리야 #명함 #문화비평 #기획 인사이트 #beyondj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