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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

여행의 마지막 날, 숙소의 물이 끊겼습니다. 예고 없이 단수가 된 것입니다. 손을 씻거나 그릇을 닦거나 볼 일을 보고 물을 내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녁부터 밤사이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밤새 뒤척였습니다. 화장실 갔다가 물 안 내려가면 어쩌나, 손 못 닦으면 어쩌나, 세수도 못하면 어쩌나, 밥 차려 먹고 설거지 못하면 어쩌나 너무 늦게 단수가 풀리면 불편해서 어쩌나 걱정되어 잠을 편하게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물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평상시엔 걱정과 불편 없이 마구 사용했습니다. 그냥 좀 틀어놓고 딴짓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교과서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물 부족 국가의 현실은 철저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했습니다. 만약에 물이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우선 혹시 물이 나오는 곳이 있을까 찾아다닐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다면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물이 나올 때까지 잠들어 있는 것이죠. 몸이나 더러운 물건을 물로 씻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강박이 있는 사람으로 물을 사용하지 못함은 일상에 치명적인 불편함을 겪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더럽게 만든 꼴에 대해서 스스로 혐오감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각자 견디지 못하는 더러운 꼴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발견하는 모습을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더러운 꼴은 얼른 씻어내 버려서 눈앞에서 치우고 싶습니다. 그런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는데, 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너무너무 싫을 것 같습니다. 얼른 치워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면 화가 나고 언제 없어지나 조바심도 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자신이 만든 오물로 더럽혀진 것입니다. 밥 먹고 음식이 묻은 그릇, 이빨에 낀 고춧가루, 변기에 똥과 오줌 등 말입니다. 어디 그뿐만입니까? 다른 사람을 향한 더러운 마음도 다 내가 묻히는 오물로 얼룩진 것입니다. 내가 했지만 보기 싫으니 물로 닦고 싶은 것이고, 그런데 닦을 수 없다면 화나고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상황을 모면하거나 외면하고 싶은데 그럴 도구나 장치가 없으니 무기력해지기도 하죠. 물이 소중한 것처럼 원래 있던 상태도 소중히 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물로 박박 닦지 않아도 깨끗할 정도로 관리하면 물이 없을 때 불편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대충 쓰고 뒤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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