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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든 줄 모르고 물든다 >

1. 아침 7시. 유세차가 골목을 돌며 개사된 유행가를 튼다. 기호 몇 번, 이름 석 자, 반복. 낮에도 들린다. 저녁에도 들린다. 하루가 끝날 무렵 그 이름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혀 있다. 선택한 게 아니다. 그냥 들어온 거다. 2. 사람은 이렇게 물든다. 3. 히틀러는 광장을 채웠다. 방송국은 안방을 채웠다. 알고리즘은 피드를 채운다. 이름만 바뀌었다. 대중이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기술, 그게 세련될수록 흔적이 줄었다. 4. 유세차가 불편한 건 보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들리고, 차가 지나가고,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하다. 설득당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저항할 수 있다. 5.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6. 피드는 유세차보다 조용하다. 알림은 골목을 돌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특정 단어를 자주 쓰고 있고, 특정 프레임으로 세상을 읽고 있고, 특정 감정이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른다. 누가 설계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 됐다. 7.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선전은 선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시대다. 과거의 선동은 광장이 필요했다. 지금의 설계는 각자의 방 안에서, 각자의 속도로, 각자가 원해서 클릭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8. 유세차는 불편하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은 편안하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게 한다. 9. 물드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인간은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동물이다. 다만 지금 내가 어떤 물에 담겨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10. 유세차가 지나갈 때 불편했다면, 그 감각이 피드 앞에서도 살아있는지. 그게 지금 시대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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