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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프를 깐 사람들의 결말 >

1. 2007년, 아이폰이 나오기 몇 달 전이었다. 당시 일했던 이동통신사는 3G로의 전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망 위에서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 같던 시절이었고, 데이터가 흐르는 곳에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2. 틀리지 않은 믿음이었다. 다만 그 미래가 누구의 것인지를 몰랐다. 통신사들은 망을 깔았으니 망 위를 흐르는 가치에서 몫을 가져올 수 있다고 봤다. 망중립성 논쟁은 그 욕망이 만들어낸 아젠다였다. 3. 결과는 달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2010년 대비 2000배 가까이 폭증했다. 그런데 통신사 주가는 25년째 제자리다. 망은 인프라가 됐고, 인프라는 공기가 됐다. 공기에는 프리미엄이 붙지 않는다. 4. 멋진 것들은 전부 애플이, 개발자들이, 앱이 만들었다. 통신사는 데이터를 날라준 셈이었다. 5. AI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지금은 도구처럼 보인다. 쓰면 편하고 안 쓰면 불편한, 소프트웨어의 일종. 하지만 이 기술의 방향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걸어간 길과 닮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것이 켜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멈추면 뭔가 이상한데, 켜져 있을 때는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게 인프라다. 6.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직접 제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모델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쌓고, 운동장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심판이 되고 경기까지 뛰려는 시도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애플이 이미 그렇게 했다. 앱스토어를 만들고, 앱도 직접 만들었다. 7. 문제는 비용이다. LLM 훈련에 들어가는 자본은 통신사가 망을 까는 비용과 구조가 같다. 거대하고 지속적이며 고정적이다. 초기에는 월정액이었다. 쓰든 안 쓰든 내는 구조. 그런데 지금은 쓴 만큼 내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더 많이 쓸수록 더 많이 번다는 계산이다. 8. 통신사도 같은 꿈을 꿨다. 하지만 무제한 데이터를 정액으로 쓸 수 있게 된 순간, 파이프의 협상력은 사라졌다. AI 과금도 언젠가 같은 압력을 받을 것이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9. 그래서 모델 회사들이 통신사의 길을 피할 수 있는지가 지금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다. 운동장을 깔면서 동시에 경기에서도 이길 수 있는지.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결국 인프라는 인프라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10. 인프라는 늘 그 위에 쌓이는 것들에게 가치를 내준다. 스포티파이가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것이지, 전선을 깐 전력회사가 버는 게 아니다. 11. 2007년 그 사무실에서도 데이터는 쉬지 않고 흘렀다. 그 위에서 무엇이 만들어질지는, 우리가 아니라 애플이 결정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파이프를 까는 사람과 그 위에서 노래를 트는 사람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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