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리 후보자와 보낸 30분 >
1. 열 장짜리 보고서를 들고 들어간 적이 있다. 네이버에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본부장이었던 그는 첫 장을 보더니 멈췄다. 30분 동안 첫 장에서 깨졌다. 그대로 나왔다. 2. 억울했다. 열 장을 준비했는데 한 장도 못 넘겼다. 속으로 생각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다는 건지. 그때는 그게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3. 몇 년 후 다시 네이버에 입사했다. 그는 대표가 되어 있었고, 나는 리더로서 정기 대표 미팅에 참석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단계가 많은 조직이었다. 위에서 의도한 것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미 전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 파트만 보고 있었다. 4.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첫 장을 보면 뒤는 다 보인다. 그저 질문 하나로도 충분하다. 목차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논리의 구조가 어떻게 서 있는지, 결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걸 한 장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실무를 오래, 깊이 한 사람이다. 5. 이후 나도 많은 사람을 뽑고, 조직을 이끌었고, 경영진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보고서 첫 장에서 내 손이 멈췄다. 의식한 게 아니었다. 첫 장을 보면 굳이 넘길 필요가 없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때 그 30분이 떠올랐다. 그는 틀리지 않았다. 내 보고서의 첫 장이 허술했던 것이다. 6. 오늘 뉴스에서 그 이름을 봤다. 국무총리 후보자.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한 사람이 거기까지 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게 아닐 것이다. 그 눈이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