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2)
푹신한 쿠션과 베개, 따뜻한 이불 덕분에 밤사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개구리 우는소리와 정체 모를 작은 동물의 움직임으로 깨긴 했지만, 걱정과 우려했던 것보다 편안한 잠자리였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다를 바라보며 이를 닦았습니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평소 하던 맨손 체조는 생략했습니다. 오랜만에 산을 오르락 내리락했던 것이 제법 무리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역시 운동은 평소에 해야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잘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리고 각자 준비한 커피 스틱을 개봉했습니다. 내려 마시는 커피, 믹스 커피 등 커피를 사랑하는 민족답게 다양한 커피를 즐겼습니다. 각자 준비한 빵도 먹었습니다. 꿀호떡, 콩팥 앙금빵, 식빵에 땅콩 쨈과 딸기잼을 발라먹기도 하였습니다. 이 순간은 화장실이 없다는 생각은 잊었습니다. 커피와 빵 앞에서 미래에 마주할지 모르는 큰 용변 따위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죠. (솔직히 한 입 먹을 때마다 배에서 구루룩 거리는 신호를 느끼며 약간 불안하긴 했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삶,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보셨나요? 지난달 여행에서 밤사이 단수가 되는 이슈가 있었는데, 상당히 불편하고 짜증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야영장에는 물은커녕 화장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고 그런가 보다 지냈습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펑펑 누리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불편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래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은커녕 환경에 적응하고 삽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다면 감사하세요. 그것 원래 내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어봐야 없어졌을 때 화만 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것 없어도 우리 잘 살 수 있습니다. 텐트를 정리하고 배낭을 메고 왔던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치 우리가 지낸 흔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오거나 이미 살고 있었던 어떤 생물이 와도 처음 있었던 모양 그대로 돌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영지 곳곳엔 제발 쓰레기 좀 가져가 달라는 표지가 서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머물다가 쓰레기를 남기고 떠나버린 것 같습니다. 대신 쓰레기를 주워 줄 순 없었지만, 가져온 것 만이라도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왔습니다. 두 끼를 간단히 먹었으니 이제 세상 문물을 맛볼 차례입니다. 대기 번호 40번까지 기다린 물회 맛집과 우연히 만난 뷰 맛집 카페에서 조미된 음식을 때려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작 반나절에 가까운 일정이었지만, 백패킹의 묘미에 푹 빠져보았습니다. 다음 기회에 혼자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직 혼자는 무리라는 판단이 듭니다. 장비도 없을 뿐더러 험한 날씨나 동물의 출현, 응급 상황이라도 생긴다면 아직 혼자 처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행의 새로운 옵션을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비행기나 기차 타고 가서 걷고 먹고 자는 편리함도 좋지만, 숨겨진 자연을 만나고 조금 불편하지만 간단히 지내는 시간 동안 함께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더 가까이 느끼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