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어도 멀쩡한 것들 >
1. 메뉴판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뭘 먹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싫은 건 금방 떠오른다. 느끼한 건 별로. 너무 단 것도 말고. 그렇게 빼다 보면 시킬 게 저절로 좁혀진다. 2. 좋아하는 걸 찾는 일은 어렵다. 싫은 걸 골라내는 일은 쉽다. 그런데도 우리는 꼭 어려운 쪽부터 붙든다. 3. 유재석은 방송에서 커피를 늘 연하게 시킨다. 한두 번이 아니다. 카페에 가도, 촬영장에서도, 누가 사다 줘도 연하게. 진하게도, 안 마시는 것도 아니다. 좋아서 끊지는 못하고, 옅게 마신다. 그가 그랬다. 나이를 먹으면 좋아하던 것과 헤어져야 한다고. 담배가 그랬고, 이제 커피가 그렇다고. 4. 헤어진다는 건 빼는 일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다. 술을 빼고, 밤을 빼고, 입에 대던 걸 뺀다. 그런데 빼고 나면 보인다. 어떤 건 없어도 멀쩡하다. 5. 없어도 멀쩡한 것. 처음부터 그렇게 좋아한 게 아니었다. 좋아한다고 믿었을 뿐이다. 6. 좋아하는 것 중엔 빌려온 게 많다. 다들 줄 서니까. 한 번 걸러진 거니까. 따라가는 게 편하니까. 그러다 빌린 걸 내 것인 줄 알고 산다. 나이는 그 빌린 걸 하나씩 도로 가져간다. 7. 그러니 좋아하는 걸 먼저 찾을 것 없다. 싫은 걸 빼면 된다. 빼고 빼다 남는 것. 그게 좋아하는 것이거나, 적어도 싫지 않은 것이다. 싫은 것 없는 하루는 그것만으로 가볍다. 8. 연하게는 그렇게 남은 한 잔이다. 다 빼고도 끝내 못 뺀 것. 옅게라도 곁에 둔 것. 9. 좋아하는 건 채워서 알게 되지 않는다. 빼다 보면 남는다. 끝까지 안 빠지는 것. 그게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