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작은 사람

지난 금요일 아들과 지하철을 타고 외출했습니다. 용산 즈음에 볼 일이 생겨서 다녀왔던 것입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산한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 아들과 앉았습니다. 아들은 지하철을 타기 전에 자판기에서 뽑은 과자와 바나나 맛 우유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아껴서 먹으려고 하는 건지, 방금 전에 저녁 식사를 해서 그랬는지 과자와 바나나 맛 우유를 먹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타면 주변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두리번두리번 정신없이 사람들을 탐색합니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과 들고 있는 물건,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까지 감시합니다. (진짜 감시는 아니고 특별히 흥미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면 더 유심히 관찰합니다) 아들과 앉은 맞은편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앞에 놓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멀리서 장을 봤거나 장바구니에 실은 물건은 다른 용도로 삶에서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식사를 못하셨는지, 장바구니에서 주섬주섬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과자 봉지가 잘 까지지 않았는지 요리조리 돌려가며 봉지를 뜯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할머니는 거친 손을 가지고 계셨고, 고된 일을 하시는지 손가락 마디가 굵고 손톱이 어두운색이었습니다. 겨우 개봉한 초코파이를 한 입씩 베어 물어 드셨습니다. 시장하셨는지 급하게 드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린 것 같았습니다. 캑캑 헛기침을 연거푸 하시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을 가지고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장바구니엔 물이 없었나 봅니다. 아들에게 사준 바나나 맛 우유를 할머니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다시 사주면 되니까 아들 손에 들려 있는 바나나 맛 우유를 할머니께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지하철 자판기에서 우유를 뽑은 것도, 뽑은 우유를 지금까지 먹지 않고 아들 손에 들고 있었던 것도 우연히 만난 할머니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에게 우유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거절할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흉흉한 세상에 낯선 사람이 갑자기 우유를 준다면 저는 안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드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괜히 불쌍해 보여서 동정하는 것처럼 느끼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유는 아들 손에 들려 지하철을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목이 마르지만 집까지 참고 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밤에 우유를 홀짝거리며 과자와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우유 껍데기를 보며 왠지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알림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