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 삼아 신문을 더 사러 나섰다. 구할 수가 없었다. 대형 서점에서도 한국 신문은 안 판다고 했다. 동네 편의점을 돌기 시작했다. 헛수고였다. 집 앞 편의점은 신문 매대를 아예 치워버렸다. 일곱
"기념 삼아 신문을 더 사러 나섰다. 구할 수가 없었다. 대형 서점에서도 한국 신문은 안 판다고 했다. 동네 편의점을 돌기 시작했다. 헛수고였다. 집 앞 편의점은 신문 매대를 아예 치워버렸다. 일곱 번째 편의점에서야 신문을 찾았다. 서울에 살면서 신문을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새삼스럽게 이 모든 일이 신기했다. 종이 신문을 잘 찾지 않거나 드라마 전체를 보지 않는 일은 놀랍지 않다. 볼 게 너무 많으니까. 신기한 건 신문 기사와 드라마의 일부가 어떤 모습으로든 돌아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신문이나 잡지는 뉴미디어와 대비되는 올드 미디어를 넘어 ‘레거시(유물) 미디어’라 불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유물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인간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대는 재치와 웃음을 즐거워하고 그런 소식을 듣고 싶어 하지’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1667년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번창할 때의 노랫말이다. 일 때문에 만났던 어느 건축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건축은 이해하기 어려운 건데 이야기 형식으로 알려주면 일반인도 다 듣는다고. 자기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인간의 본능이 그대로인 채 본능을 자극하는 기술만 발전한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들은 16부작 드라마를 다 보는 대신 요약본 영상을 찾는 시대.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박찬용 칼럼니스트의 글. 작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 했을때 종이신문을 구하러 다닌 상황과 너무 유사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