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환경이 주는 영향.. 별도 코멘트를 추가하진 않습니다] 내가 동네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났을 무렵, 그래서 보광동과 옥수동으로 집을 보러 다니고 잇던 시기. 1층에 새로운 세입자들이 이사를 왔다.

[환경이 주는 영향.. 별도 코멘트를 추가하진 않습니다] 내가 동네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났을 무렵, 그래서 보광동과 옥수동으로 집을 보러 다니고 잇던 시기. 1층에 새로운 세입자들이 이사를 왔다. 점잖은 인상의 중년 남성과 기품 있는 분위기의 중년 여성, 그리고 표정이 밝은 10대 남매가 한 가족이었다. “위층에 사는 선생님이시지요?” 며칠 뒤 건물 입구에서 마주친 1층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로 이사 오신 선생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호칭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가끔은 어이, 형씨 등으로 불렀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존칭하는 사람은 내가 만난 동네 주민 가운데 그가 유일했다. ... 바깥이 소란스러웠던 어느 저녁, 창밖을 내다보니 두 남자가 집 앞에서 다투고 있었다. 주차든 쓰레기든 자주 싸움이 일어나는 동네라 웬만한 일에는 심드렁했지만 그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둘 중 한 사람이 ‘1층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는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라거나 “조금만 진정하시죠” 같은 말을 했다. 무엇보다 그 와중에도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불고 있었다. 남자가 누구 하나 후려칠 기세로 날뛰기 시작하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선생님 제발, 선생님 제발”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앞 뒤 사정은 모르지만 1층 선생님이 잘못했을리 없었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과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 상대를 “개새끼”라고 부르는 사람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서 후자가 잘못했을 리 없었다. 잠시 후 남자는 싸움을 말리러 나온 1층 선생님의 부인과 딸을 향해, 차마 옮겨 쓸 수 없는 성적 모욕의 뉘앙스가 강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 순간 1층 선생님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더 이상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욕설이라기보다는 울부짖음처럼 느껴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동네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대접하는 사람, 나의 상처가 아픈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나는 매사에 ‘내 돈을 써야 하는 일인가’만 생각하는 사람, 폭력적인 시선으로 남을 쳐다보는 사람, 남의 차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 욕설을 퍼붓고 악을 쓰는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 뿐 아니라 누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 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알림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