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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디자인을 진행할 때 가끔씩 마음 속에 되새기는 문장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묵란도에 쓰인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디자인을 진행할 때 가끔씩 마음 속에 되새기는 문장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묵란도에 쓰인 추사 김정희의 글입니다. “난을 그리는데 법도는 없지만 법도 없이 난을 그리지는 않는다.” 창의 영역에서 이 말이 얼마나 뛰어난 통찰인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넷플릭스의 이 근래 “자율과 책임”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경영과 조직문화의 이슈였습니다. 2009년 아마존에 최고가로 인수된 자포스는 직급없는 완전한 수평적 체계인 “홀리크라시”로 유명하죠. 자율경영시스템입니다. 분명하고도 강력한 핵심원칙만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자포스의 혁신적인 사고는 컨텍센터라 부르는 콜센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작고한 자포스의 CEO였던 토니 셰이는 텔레마케팅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콜센터야말로 고객과 “인간적인” 최적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가장 효율적인 기능을 가진다라고 하였습니다. 8시간 넘게 한 명의 고객과만 통화했던 직원이 비록 구매로 유도하지는 못했지만 자포스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고객감동을 실천했다는 사유로 우수사원으로 선정되는 등 파격적인 자율의 극단을 보여주었습니다. 넷플릭스, 자포스 모두 “극단”까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극단, 이 뾰족함. 저는 이것이 디자인과 가장 맞닿아 있는 성질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한번 다루기로 할께요. 자율(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규율(법도)이 필요합니다. 디자이너이므로 디자이너의 자율에 한해 이야기를 해볼께요. 다행이게도 저는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결정 권한이 부여된 환경에서 주로 일해 왔던터라 현업에 있으면서 디자이너에게 “자율”이 확보되는 것이 새로운 시도와 문제해결에 몹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체감해 왔습니다. 상명하달에 익숙하고 지위에 민감한 체계에서는 결정 권한이라는 용어가 거슬릴 수 있습니다. 권한이라니? 그림만 그리는 디자인 부서가 대관절 무엇이관대? 다양한 유관부서간 동등한 파트너십 협업이 낯설은 조직문화에서는 충분히 들 수 있는 생각이라 봅니다. 이는 독단이 아닌 독자성을 말하며, 디자인적 판단이 필요한 범위에 대한 전문성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저는 에이전시에서,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까지 여러 유형의 회사를 거치다 보니 각 유형별로 요구되는 자율의 성격도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이전시에서는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 제시와 더불어 그 에이전시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므로 대개 저연차라 할지라도 시안개발 초기부터 참여하고 자유로운 의견개진 및 시안 전개를 진행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대기업에서는 일단 취급 SKU가 상당하고 중간 단계도 많고 다양한 유관부서와의 협업 규모가 크므로 세분화된 각 부서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의사결정권이 해당 파트에 임파워먼트 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스타트업은 한 사람이 그 파트에서 일당백해야 하면서도 타 팀과 오버랩 되어 자주, 빠르게 의견교환 및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최대한 린하게 대응하는 것이 유효합니다.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중간적 성격입니다. 그래서 갖는 장단점이 혼재돼 있습니다. 다소 체계가 없어 발생하는 혼동과 혼선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R&R도 없이 체계적으로 업무프로세스가 발전해 가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각 팀의 전문성이 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업의 본질이 희석되고 책임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자칫 자기 기준으로, 자기 편한대로가 자율이라는 왜곡된 업무방식이 형성되기 십상입니다. 자율을 정의하는 기준이 제각각인 것이지요. 이는 리더십에 치명적이며 불필요한 업무갈등과 낭비의 원인이 됩니다.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업무방식을 추구하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시스템”입니다. 여러 유형의 조직을 거치면서 얻은 경험치 중 하나는 시스템은 귀찮고 거추장스로운 형식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입니다. 시스템은 지켜야 하는 고정형인 동시에 진화할 수 있는 가변형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형식이나 틀, 절차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묵란도에 쓰인 추사 김정희의 글처럼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지만 시스템 없이 크리에이티브 작업이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자율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원칙입니다. “자신이 프로가 되는 것”. 혹독한 자기발전의 과정과 냉철한 자기성찰 없는 자율 추구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특히 리더라면 조직을 수렁에 빠트리게 만듭니다. 자기자신을 채찍질 하지 않는 디자인 리더는 폭발하는 창의적 열정으로 일하는 하고잡이 디자이너들을 깊은 절망에 빠뜨리게 만듭니다. 창의적 일은 자율적이어야 합니다. 한편 창의 영역이 충분한 룸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창의를 위한 자율은 원칙과 시스템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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