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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닝화 없어도 달릴 수 있잖아? 몇년 전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앗. 달릴 때 신을 만한 적당한 신발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화는 많은데 런닝화가 없네?'

- 런닝화 없어도 달릴 수 있잖아? 몇년 전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앗. 달릴 때 신을 만한 적당한 신발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화는 많은데 런닝화가 없네?'였다.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치고 하나 사기로 했다.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식스 것이 가성비가 제일 좋은 것 같았다. 조금 더. 찾다 보니. 어느새 최상위 모델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십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 축구화도 그 돈 주고 산 적 없는 내가 '달리기'를 정말 열심히 꾸준히 꼭 할 거니까 '이건 투자야!'라는 마음으로 무려 최상위 모델을 질렀다. 그것도 그해 나온 최신 상품으로. (가성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달리기, 한 번 했다. 진짜 정확히 단 한 번 했다. 그 신발 신고. 최고급 런닝화는 발이 하도 편하고 통풍도 잘 되며 색감도 좋았기에, 출퇴근하며 신고 다니다가 수명이 다해 버렸다. 아직도 새것 상태로 신발장에 잠들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시나리오지만, 본연의 용도로 사용되다 죽은 것은 아니다. (출, 퇴근길에 뛸 때가 있긴 했으니... 라고 적으려고 했으나 너무 구차하다) 사실 달리기는 청바지에 컨버스를 신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물론 발바닥에 닿는 충격과 그로 인한 무릎 연골과 발목 관절등의 손상을 생각하면 쿠션이 좋은 운동화일수록 좋겠지만 말이다. 물론 청바지는 땀 배출이 잘 되지 않고 원체 무겁고 긴 바지라 활동에 불편을 주니까 러너들이 입는 '착' 달라붙는 바지나 반바지가 더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청바지를 입고 컨버스를 신고도 '얼마든지, 매일'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완벽한 조건, 상황, 시간, 세팅이 오기를 기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 117. 기대치가 비현실적일 만큼 너무 높은 사람은 완벽한 실행 시나리오를 꿈꾼다. 그런 사람은 책을 쓸 때에는 기운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글이 한 줄이라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기운이 없을 때는 TV나 보는 게 낫고, 기운이 있을 때 무언가 능동적인 일을 하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완벽주의자들은 움직이려면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고, 할 마음이 들어야만 할 수 있다. 글을 쓰기에 장소가 딱 알맞아야 하고, 애용하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커피와 간식거리를 옆에 구비해놔야 하며, 보름달이 떠 있어야 한다. 글이 많이 써질 리가 없다. 이런 기본 철학이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듯 생활 전체로 퍼져나가며 그 사람을 짓누른다. 기대치가 너무 높은 사람은 이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는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이 핵심인지 놓치고 있다. 무언가를 할 때의 핵심은 무언가를 한다는 그 자체다. - 이 깨고자 하는 것은 완벽주의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비완벽주의자가 되라고 한다. p 29. 완벽주의는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 모양도 맛도 각양각색이지만 아이스크림의 기본 재료는 어차피 다 우유와 설탕인 것처럼, 완벽주의의 모든 특징을 완벽히 압축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인 특성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다. 사람들은 세 가지 기준에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상황과 질, 양이다. - 사실 우리는 완벽주의의 압박을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강요받는 사회에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근본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감. 비완벽주의자? 설렁설렁 사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저자인 스티븐 기즈가 말하는 비완벽주의자의 멘탈은 이렇다. p 84. 비완벽주의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그것의 생생한 매력이 고스란히 눈에 보일 것이다. 여기 당신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문제를 다 인식하지만 그것 때문에 방해를 받지는 않는다. 원래의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완벽주의자처럼 굴지만 상상 속의 당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두세 가지가 어그러지기도 하지만 침착하게 반응한다. 거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상상 속의 당신은 남들의 잔소리를, 실수를, 거절당하는 것을, 완벽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을, 모든 것을 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상상 속의 당신은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완전히 침착하게 온 정신을 집중해 생산적으로 움직인다. 당신은 지금 파티에 참석해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댄스 동작도 선보였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당신은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움직였다.) -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홍진호의 콩댄스가 생각났다. (두 번 생각했을 것 같지 않아서) 콩댄스가 뭔지 혹시 처음 들어봤다면 꼭 유튜브에 검색해 봐라. 나는 방금 당신에게 2분짜리 웃음을 선사했다. 이 책을 읽은 후부터 하루에 스쿼트 한 번을 한다. 겨우 스쿼트 한 번? 그게 무슨 운동이 돼? 운동이 되지 않는다. 다만 습관이 된다. p 119. 하루에 팔 굽혀 펴기를 최소 50번은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면 공중화장실에서는 할 수가 없다. 침대에서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한 번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루 온종일로 연장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팔 굽혀 펴기를 할 기회가 굉장히 많이 생겨난다. p 116. 하루에 정원의 잡초 한 가닥 뽑는 것을 충분한 수준이라고 정한다면, 어느 사이에 "그다지 성에 차는 건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면서 풀 몇 가닥을 더 뽑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아주 작은 목표는 안할 핑계를 댈 수 없다. '운동할 시간이 없어. 장소가 적절치 않아' 같은 핑계 말이다. (물론 인간 최고의 필살기 '귀찮아, 피곤해'에는 이마저도 무력하겠지만) 일단 하나를 한다면 감질맛나서 몇개 더 하게 될 것이다. 이거 해야지- 하고 결심하면 못 한다. 작심삼일을 100번 하면 된다는 건 들을 땐 띵언 같은데 사실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다. 딱 한 번만 유효하고 세번째 작심삼일 해야하는 9일쯤 지나면 그런 생각도 나지 않으니까. 강한 동기부여! 결심!!! 많이 해봐서 알겠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p 72. 동기부여 전략은 동기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영구불변이라 가정한다. 최고의 목표가 운동이라고 했을 때, 길고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후라 운동을 할 의욕도 나지 않고 동기를 억지로 쥐어짜고 싶은 생각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동기부여 전략은 모래밭 위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보다는 시작부터 튼튼한 것이 낫다. 실행할 의욕이 전혀 없는 순간에도 조금씩 쌓아 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한 밑받침이 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많지는 않다. 그러나 작게 한 발만 전진하거나 '작은 목표'를 완수하기로 한다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한 의지력만 발휘해도 되고, 그럼으로써 튼튼한 밑받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습관의 재발견]은 가장 강력한 응용법인 '습관 만들기'에 이런 과정을 대입했다. - 나는 위 내용에서 '미미한 의지력' 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스쿼트 하나 하는 데는 정말 미미한 의지력만 있으면 된다. 이 책이 괜찮다고 하는 생각하는 이유는 '뜬구름 잡는 조언'을 하지 않아서이다. 들으나마나 한 소리들 말이다. 자매품으로 '~~ 하는 몇 단계' 류가 있다. "마음을 비워라" 한다고 비워지냐고. 어떻게 하면 비울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지. 저자 자신의 얘기라도 해주면서 최소한 '나는 이렇게 했다.' 정도의 how도 없는 책은 죄다 본인 삶에서 검증도 거치지 않은, 머리로만 쓴 책이다. p 66.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실행하는 자유를 되찾도록 도와주는 데 있지만 대다수 책들과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한다. 어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략도 없이 "자유로워져라" 내지는 "내려놓아라"라고 말하는 책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겠지만, 뇌가 변하지 않으면 본인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 책을 통해 동기부여의 불꽃을 지펴 지속적인 변화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 가능성은 요원하다. - 스티븐 기즈는 그렇게 했다. 많은 수의 'how'와 '자신의 경우'가 나오지만 딱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디지털 사고법]이다. " 이진법은 0과 1이라는 두 숫자로만 구성되는 컴퓨터 언어다. 오늘날을 지배하는 디지털 기술은 바로 이 이진법을 바탕으로 삼는다. 어느 날 마트에 갔을 때였다. 숨이 멎을 정도로 근사한 여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그렇게 멋진 여자에게는 말을 걸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무모한 짓인데다 잘 안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전부터 디지털 사고를 고민해오던 참이었고 어쨌든 한 번쯤은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달성할 수 있는 디지털적 목표를 설정했다. -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 1 - 말을 건네지 못한다 = 0 간단히 정리하자 눈앞이 훤해졌다. 해보지도 못할 정도로 어려운 행동이 아니고 (나는 딱 한 단어만 꺼내면 된다) 청산유수로 대화를 술술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난생처음 씻은 듯 사라졌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안 되더라도 그냥 얼른 마트를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만 간신히 꺼냈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걸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지? 당연하지! 그녀가 황당해할까? 물론이지! 내가 성공한 것일까? 성공한 게 맞았다. " - 이게 뭐야??? 싶을 수도 있지만, 그 다음에는 여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설마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 포인트는 성공의 기준을 '아주 미미한 의지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잡아보라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스쿼트건 뭐건 한 시간~ 한 시간 반 정도 운동하지 않으면 안 한 것, 혹은 하다 만 것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그만큼의 시간이 없으면 아예 시작을 안 했다. 그렇지만 디지털 사고법을 적용한 지금은 하루에 스쿼트 하나 하면 운동 한 것이고, 안 하면 안 한 것이다. 자기만족이 아니다. 작은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p 6. 이 글을 쓰는 현재, 내가 하루에 한 번 팔 굽혀 펴기를 실천한 지 2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나는 작은 습관이 날이 갈수록 계속해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일단, 하루 한 번 (또는 그 이상) 팔 굽혀 펴기를 6개월 넘게 했더니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그 이후, 일주일에 3일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게 되었고, 5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일주일에 5일을 운동하러 나갔다. ... 매일 운동하기에 성공한 후 곧바로 매일 두 쪽씩 책을 읽고 하루에 50 단어씩 글을 쓰는 작은 습관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1년 여가 지난 뒤에도 목표치를 높이지 않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며, 그때그때 다르지만 결과는 목표치보다 항상 높다. 여기에서 나는 작은 습관들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걸음일지라도 건강한 방향으로 걷는 꾸준하고 점증적인 걸음은 커다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말이다. - 책의 본문을 꽤 많이 옮겼다. 사실 더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만해야겠다. 직접 읽고 내용을 파악함을 즐거움을 헤치기 전에. 당신도 콩댄스를 추고 싶은가? (아 이게 아니지.......) 당신도 완벽주의를 벗어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을 꼭 읽기를. 분명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몇 년 전 쓴 글을, 퇴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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