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노동의 사각지대는 있다 - 북유럽의 베리 농장 이야기] 핀란드 경찰이 최근 불거진 ‘베리 농장 노동착취’ 이슈와 관련,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덮기로 했습니다.
[어디에나 노동의 사각지대는 있다 - 북유럽의 베리 농장 이야기] 핀란드 경찰이 최근 불거진 ‘베리 농장 노동착취’ 이슈와 관련,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덮기로 했습니다.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합니다만...살짝 "북유럽 너 마저?!" 싶은 충격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요 ㅠㅠ 북유럽의 베리 농장은 강력한 노조, 노동자 보호 정책, 복지가 통하지 않는 북유럽의 공공연한 모순입니다. 그곳은 평등과 공정성의 노르딕 모델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값싼 노동력’과 ‘시장주의’ 그리고 ‘기회주의’만이 만연하죠. 1. 핀란드에는 매년 여름 수많은 동남아와 동유럽의 소위 ‘노동력이 싼’ 나라의 노동자들이 찾아옵니다. 핀란드 중북부에 있는 베리 농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베리 수확은 매우 노동집약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농장주들은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핀란드 현지 인력보다는 해외에서 값싼 노동자들을 데려와야 하는 현실이죠. 이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게서도 똑같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말 그대로 북유럽식 ‘여름철 한철 장사’입니다. 2. 농장주들은 최대한 임금 단가를 낮추기 위해, 베리 수확 외국인 노동자들을 ‘실적’을 기반으로 수당을 줍니다. 매일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국을 쏘다니며 베리를 수확합니다. (굳이 농장주의 사유지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날 얼마나 베리를 많이 따 왔는지에 따라 벌어가는 비용이 다르죠. 핀란드 노동규제 당국들도 이 상황을 사실상 용인해주고 있습니다. 핀란드 노동법이 ‘실적 위주 임금 수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3. 핀란드 베리 농장주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단가에 굉장히 민감한 업종입니다. 농장주들은 현지 노동법이 요구하는 고용 안정체계, 고용 보험, 노동자 복지 및 권리 보장을 다 따지면 베리 산업은 죄다 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핀란드판 을과 을의 싸움 ㅠㅠ) 핀란드 노동당국도 사실상 농장주들에게 면책을 주고 있고요. 그래서 핀란드 베리 농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알아서 각자도생 해가며 베리를 따 옵니다. 핀란드에 오기 위한 비행기 값, 숙소 값, 식비, 심지어 베리를 따러 이동할 때 타는 자동차와 연료값도 모두 외국인 노동자 자부담입니다. 기한은 베리 수확이 가능한 약 한 달. 그 사이 핀란드에 오기 위해 쏟아부은 모든 돈을 메꿀 만큼의 일확천금을 노려야 하죠. 직접고용 관계가 아니기에 베리를 따다가 다치거나 아프더라도 아무런 조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4. 일부는 이러한 베리 농장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오히려 ‘본인들이 원해서 온 것’ ‘실적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라며 옹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리 농장의 현실이 노르딕 사회복지 국가가 지향하는 ‘공정한 복지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5. 베리 농사가 잘 되던 시절엔 그나마 이러한 사각지대가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좀 불평등하면 어떤가요 - 돈만 많이 벌면 되지. 이렇게 우야무야 운영되던 핀란드 베리 농장은… 작년부터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 수 있는 루트가 제한되기 시작했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베리 작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6. 얼마 전 태국에서 온 베리 수확 노동자들이 대거 코로나 19에 확진되었습니다. 아무런 의료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노동자들은 병이 걸렸고, 이들이 계속 베리를 따러 다니면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ㅠㅠ) 집단감염으로 이어졌죠. 상황을 보다 못한 태국 정부가 나서 핀란드에게 ‘이 사태를 해명하라’ 라고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핀란드 베리 농장주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요. 그들을 직접 고용한 게 아니라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나아가 베리 작황이 안 좋자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은 베리 농장주들이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불거진 헝가리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만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베리가 많이 많이 나 있다는 소식에 큰돈 들여 핀란드까지 왔는데… 알고 보니 베리 보기가 가뭄에 콩 나듯 어려웠다는 것이죠. 이에 헝가리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투자한 시간이라도 보상받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 경찰은 농장주들이 직접고용을 한 게 아니므로 책임질 의무가 없다고 이 건을 ‘무혐의’ 처리해버렸군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