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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앤드리슨은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대학 시절 일찌감치 인터넷의 가능성을 간파한 그는 1992년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 ‘모자익’을 개발했다. 2. 졸업 후엔 실리콘

1. 마크 앤드리슨은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대학 시절 일찌감치 인터넷의 가능성을 간파한 그는 1992년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 ‘모자익’을 개발했다. 2. 졸업 후엔 실리콘밸리로 옮겨가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고, 웹브라우저 ‘내비게이터’의 상용화에 나섰다. 내비게이터의 탄생은 인터넷 열풍의 기폭제였다. 당시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던 인터넷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5년의 넷스케이프 주식 상장과 주가 급등은 곧이어 불어 닥친 닷컴 투자 열풍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3. 그러나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를 버텨낼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앞세워 넷스케이프를 압박했고, 결국 앤드리슨은 1999년 AOL에 넷스케이프를 매각해야 했다. 4. 넷스케이프 이후 클라우드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영역을 개척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음에도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앤드리슨은 핵심 사업을 매각한 후 사명을 바꾸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HP에 회사를 넘겼다. 5. 여기까지가 앤드리슨의 인생 1막이다.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인터넷 혁명을 이끈 창업자 인생이다. 그러면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자라도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앤드리슨이 향한 곳은 ‘엔젤투자’였다. 6. 투자자로 변모한 앤드리슨의 인생 2막은 2009년 벤처캐피탈(VC) ‘앤드리슨 호로위츠’(이 회사는 ‘a16z’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를 설립하면서 본격화했다. 7. 후발 주자라 여러모로 불리했던 앤드리슨은 VC 모델의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연예기획사’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연예기획사와 마찬가지로 VC의 성공도 유망한 인재를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는 데 달려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8. 새로운 모델의 출발점은 창업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다른 VC와 달리, a16z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를 ‘고객’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주(錢主)라는 우월한 지위에서 내려와 창업자를 경영자로 거듭나게 하는 조력자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9. 대외적인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VC 문화 탓에 업계에서 전무하다시피 했던 대외 마케팅 기능을 (콘텐츠로) 강화했다. 스타트업과 창업자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관련 기업과 교류의 기회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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