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유행과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 중 ‘코르가즘’이 있다. 향기 때문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해 흥분된 상태를 말한다. 이런 신조어까지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향에 민감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향
최신 유행과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 중 ‘코르가즘’이 있다. 향기 때문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해 흥분된 상태를 말한다. 이런 신조어까지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향에 민감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향수 시장 매출은 최근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팬데믹 시대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파는 향수 산업의 매출이 이렇게 성장하는 이유는 뭘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분석심리연구가인 이나미 교수는 이 현상을 4가지로 설명했다. 1) 향기에 관심을 갖고 이를 관리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의미다. 즉,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증거이다. 2) 냄새는 위생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위생관념에 예민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3) 후각은 생각이나 논리를 떠나 가장 원초적으로 느끼는 감각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옷이나 베개를 버리지 못하고 그 체취로 아쉬움을 달래 듯, 위기상황에서는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원초적인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4) 후각은 일에 집중하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다른 감각들과 병행이 쉽다. 집콕 생활에 지루해진 사람들이 감각을 위한 소비를 늘리면서 가격 부담은 적고 감정 전달에 좋은 향수라는 매개체를 적극 활용하게 됐다. 즉, 늘 마스크를 쓰고 지인들과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코로나 블루와 코로나 레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좋은 향수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향수는 대표적인 ‘소확행’ 아이템이다. 명품 패션 하우스들 대부분이 향수를 출시했고 동일한 브랜드 정책을 유지한다. 때문에 향수는 명품 브랜드를 소유할 수 있는 엔트리 아이템으로 인기가 많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립스틱이 이 역할을 했지만, 마스크 착용 및 비대면 시간 증가로 많은 여성들이 색조 화장을 포기하는 대신 향수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몸짓·소리·기호 등의 비언어적 신호에 주목한 책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는 ‘후각 신분증’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인간은 저마다의 체취가 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후각 신분증에 의해 타인에게 좋고 싫음을 평가받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이미지로 남다른 취향을 구현하고자 하는 MZ세대가 니치 향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향수 트렌드는 ‘젠더리스’와 ‘상상을 자극하는 제품명’이다. 최근에는 향에 대한 성별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성별로 선호하는 향이 비교적 뚜렷했지만, 지금은 본인의 개성에 따라 선택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너무 여성적이거나 너무 남성적인 향은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확산하면서 ‘뻔하지 않은 취향’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향수를 뿌려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상을 자극하는 이름을 짓는 것도 주요 트렌드다. 예를 들어 ‘바이레도’ 브랜드의 향수 중 ‘그린’은 어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서 났던 냄새가 초록색 완두콩 냄새였던 것을 회상하면서 만들었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블랑쉬’는 흰색이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순수함이라는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씨는 “향기·음악·조명 등 보이지 않는 것으로 공간을 완성하려는 경향이 최근 인테리어 업계의 대세”라며 “취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이런 시도는 더욱 확산·발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