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다. 지금껏 통해 왔던 것들이 더는 통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짙은 안갯속을 더듬더듬 가야 할 판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국가 경제와 정치 혹은 기업의 미래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금껏 통해 왔던 것들이 더는 통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짙은 안갯속을 더듬더듬 가야 할 판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국가 경제와 정치 혹은 기업의 미래처럼 큰 것들에 주로 언급되곤 하지만 개인의 인생에도 불확실성은 찾아온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불확실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한 가지를 빼고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특히 환경을 통제할 힘이 없는 개인들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내겐 오래전부터의 관심사이자 질문이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게 흥미로운 데가 있어서 마음속에 질문을 품고 있으면 발효가 시작된다. 콩이 발효되어 된장이 되고 청국장이 되는 것처럼 질문을 품은 자리에 뭔가가 꾸물꾸물 생겨난다. 나는 그것을 ‘인사이트’라고 부른다. 겉에서 잘 보이지 않던 안쪽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래 질문을 품은 끝에 어떤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불확실성의 그래프’다. 간단한 그래프 하나를 그려 보자. 가로축을 노력, 세로축을 성취라 하자. 노력하는 대로 성과가 나온다면 그래프는 우상향 45도 형태가 될 거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계단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영어를 공부한다 치자. 일주일 공부하면 일주일만큼 영어가 들리고 2주일이 지나면 또 그만큼 진도가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채 시간만 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이걸 계속해야 되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포기하고 싶지만, 다시 마음을 먹고 계속한다 치자. 어느 날 귀가 열린다. 영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 이제 됐구나 하며 마음을 놓는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나면 또 제자리다. 다시 모르겠는 거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남은 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성취는 불확실성의 구간을 통과해야 가능하고 그래서 그래프는 계단식이 된다. 성취 그래프는 왜 이런 식일까. 왜 노력하는 대로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고 애간장을 태우는 걸까. 나는 실없이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단단한 소수를 골라내는 우주의 테스트가 아닌가 하고. 정말로 그 일이 하고 싶은지, 절실하게 원하는지를 걸러 내려는 이치가 아닐까 하는. 만약 성취를 바로바로 실감할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사 대부분은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 불확실성이 사람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다. 전부를 거는 거다. 여차하면 발을 빼려는 태세로 한 발만 담그는 게 아니라 두 발을 다 담그고 전력을 다하는 거다.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 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싶겠으나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절실하게 원하는 것에 전부를 걸라고. 불확실성의 안개는 그 힘이 걷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