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대개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종류는 달라도, 해법을 찾는다는 면에선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신제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영업을 뛰며 고객에게 더 나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대개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종류는 달라도, 해법을 찾는다는 면에선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신제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영업을 뛰며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모두 해법으로서의 노력들이다. 중요한 건 이런 노력들로 문제가 해결되었느냐이지, 무언가를 했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결과만 중요하고 과정은 중요치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애초에 그 일을 하는 목적에 부합한 결과가 나왔는지, 그 노력이 해법으로써 작동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다했는데 뭘 더 하라는 거냐’라고 반응한다. 우리는 종종 가치관이나 기질이 다른 사람들과 파트너가 되거나 팀을 이뤄 함께 일한다. 그런데 유난히 합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만나야 좋은 ‘케미’가 나오는 걸까. 확실한 하나는 ‘어디까지 애쓸 것인가’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날 때가 아닐까 한다. 자, 여기 두 사람이 있다. A는 얼룩이 지워졌건 아니건 청소라는 행위를 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B는, 몇 번이고 다시 해서 깨끗해져야 할 일을 한 거라고 주장한다. 이 두 사람은 사이좋게 함께 일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누구와 일할지 정하는 입장이라면 당신의 선택은 누구일까? 회사에 다닐 땐 주로 회사 사람들과 일했지만, 책방을 열고부턴 많은 일을 ‘따로 또 같이’ 방식으로 한다. 이 일은 A와, 저 일은 B와 해보면서 서로 잘 맞고 성과가 좋으면 계속 이어나가는 식이다. 책방이라는 새롭고도 낯선 일을 하면서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어떤 기준으로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하는지를 알아차리며 나혼자 재미있어 한 적이 있다. 나의 선택 기준은 유능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애쓸 것인가’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수준’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 본 사람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었다. 어떤 일을 새로 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재미있겠다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과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째 사람들과는 함께하지 않았다. 서로 맞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해법을 찾는 것이다. 한데 이 중요한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해법이 찾아지지 않았는데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더 이상 애쓰려 하지 않는 경우 말이다. 작동하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일을 하라고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거다. 귀찮더라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